새해, 점심시간이 두 시간으로 늘어난다면 어떨까. 직장인이라면 다들 반가워할 것이다. 시간의 여유가 생겨서 맛집 탐방도 하고 운동이나 산책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최근 우리 주위엔 점심시간이 두 시간으로 늘어난 사람들이 제법 많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기쁘지가 않다고 한다. 바로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임금을 적게 주려고 무급 휴게시간을 늘리는 ‘꼼수’ 때문에 쉬지 못하는 휴게시간만 늘었다는 경비원들이 많다. 휴게시간을 1시간 늘리면 경비원들의 월급은 10만원 이상 깎이게 된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대부분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한다. 식사와 수면을 위한 휴게시간을 6~8시간 정도 제공받기로 근로계약은 체결하지만, 별도의 휴게시설이 없어 휴게시간에도 경비초소에서 대기하다보니 제대로 쉬지 못한다. 수면시간에도 경비초소를 지키며 불편하게 새우잠을 자는데, 밤늦게 귀가하는 주민들이 택배를 찾아간다고 잠을 깨우기도 하고 전화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차량 때문에 잠을 깨기 일쑤다.

근로계약에 의해 보장되는 휴게시간의 개념을 제대로 모르는 일부 입주민들은 초소에서 잠 자는 경비원을 보면 게으름을 피운다고 생각하며 호통을 치기도 한다.

한 아파트 경비원의 분신자살을 계기로 갑질과 폭력, 집단 해고의 위협 속에 놓인 아파트 경비원들의 우울한 현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던 지난 2014년, 에너지 절약을 통한 ‘착한 관리비 낮추기’를 하는 대신 경비원의 임금을 인상하고 고용을 보장해준 한 아파트의 사례가 화제였다.

서울시 성북구 석관두산아파트 주민들은 지하주차장과 엘리베이터의 조명을 모두 LED로 바꾸고 세대별 전기사용량도 줄여 관리비를 매년 수억원씩 아꼈으며 관리비의 대부분은 에너지 요금이지, 경비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미만이므로 경비원의 일자리를 빼앗는 ‘나쁜 관리비 낮추기’는 하지 말자는 합의를 이뤄냈다. 에너지와 일자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 이 혁신적인 사례가 언론을 통해 알려진 뒤 모범을 널리 확산하려는 각계의 노력이 이어졌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올라가면서 새해 들어 경비원을 해고하거나 휴게시간을 늘리는 아파트들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또 들려온다.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는 아파트도 늘어나 경비원 대량해고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전기요금 누진제가 완화돼 관리비 부담이 대폭 줄어든 가구들이 많을 것이다. 누진제 완화로 전기 많이 쓰던 가구들은 요금을 반값만 내도 될 정도로 큰 혜택을 받게 됐다. 새해, 반값 전기요금의 혜택을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는 경비 노동자들에게 나누는 아파트들이 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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