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메갈이지?’ 페미니즘 지지 발언에 낙인 찍는 사회
‘너 메갈이지?’ 페미니즘 지지 발언에 낙인 찍는 사회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6.12.28 22:06
  • 수정 2016-12-29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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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공개 지지하면 ‘마녀사냥’ 표적 돼

부당 교체·논평 철회·작업 삭제에 인신공격까지

여성들의 ‘자기 검열’ 부추길 우려도

 

“소희 걔는 페북에서 맨날 ‘메갈(메갈리아)’ 글 좋아요 누르고 공유하더라.” “그렇게 안 봤는데 메갈이네.” 페미니즘 관련 페이스북 페이지의 게시물들을 꾸준히 구독하는 대학생 김소희(23·가명) 씨는 최근 남자 동기들이 자신을 두고 나누는 뒷담화를 우연히 엿들었다. 대학생 김유라(24) 씨는 최근 ‘군복무를 하지 않아도 되는 한국 여자들은 성차별을 당해도 된다’는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남자친구의 반응은 이랬다. “이건 아니지. 너도 메갈에 물들었구나....”

최근 경기도 부천시 부천남중학교는 남성 누리꾼들로부터 ‘메갈 교사 퇴출’ 압박을 받고 있다. 교내 성평등 게시판에 교육 자료로 붙은 ‘혐오의 피라미드’ 자료 때문이다. 페미니즘 커뮤니티 ‘레디즘’ 회원이 미국의 유대인 차별반대 단체 ADL(Anti-Defamation League)이 만든 ‘혐오의 피라미드(Pyramid of Hate)’를 차용해 만든 자료다. 일상 속 성차별이 어떻게 페미사이드(여성살해)로 이어질 수 있는지 설명했다. 이 사실이 SNS를 통해 알려지자, 남성들은 “남성혐오를 합리화하는 행위”라며 학교와 관할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민원 폭주로 학교 홈페이지는 28일 현재까지도 닫혀 있다. 학교 내부에선 담당 교사에게 징계를 내리기로 했다는 말이 나돈다. 

페미니즘에 사회적 낙인을 찍는 행위가 일상이 됐다. ‘성평등은 시대정신’이라지만, 페미니즘을 공개 지지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여전히 일자리를 잃거나, 목소리를 잃거나, 도를 넘은 인신공격까지 당하고 있다. 만연한 여성혐오에 대한 모든 문제 제기를 싸잡아 공격하는 마녀사냥이다. ‘너 메갈이지?’를 앞세운 혐오와 폭력은 더 교묘하고 노골적으로 여성들의 ‘자기 검열’을 부추기고 있다. 

 

성우 김자연씨가 7월 18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 인증 사진. ⓒ김자연 씨 트위터 캡처
성우 김자연씨가 7월 18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 인증 사진. ⓒ김자연 씨 트위터 캡처

페미니즘에 대한 낙인과 배제 흐름은 지난 7월 ‘넥슨 성우 부당 교체’ 사건으로 확산됐다. 넥슨 게임 캐릭터 성우인 김자연 씨가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남성들의 항의로 인해 교체된 사건이다.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는 이에 “정치적 의견이 직업 활동을 가로막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논평을 냈다가 당 안팎의 비난에 철회했다. 넥슨을 비판하는 성명을 낸 게임개발자연대도 “메갈을 지지한다”는 질타를 받았다. 가수 안예은 씨는 트위터에 “티셔츠 샀다고 메갈이면 메갈하지 뭐. #내가메갈이다” 라고 썼다가 사과문을 올렸다. 시사주간지 ‘시사인’은 ‘메갈리아 이슈’ 보도 이후 ‘절독 사태’를 겪었다.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페미니즘 이슈를 꾸준히 다뤄 온 언론들도 ‘메갈 언론’으로 낙인찍혀 구독 해지 운동 대상이 됐다. 서브컬처 계에선 ‘메갈’ 작가들과 이들의 작품을 검열하자는 ‘예스컷(YES CUT)’ 운동이 등장했다.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축소하려는 남성들의 공격성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지난 5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 강남역 10번 출구 등 전국 각지에서 반 여성혐오 시위가 열렸다. 적지 않은 여성 참가자들이 ‘몰카’ 촬영, 온라인상 ‘신상 털이’와 인신공격을 당했다. 방송인 서유리 씨는 지난 5월 경희대 총여학생회가 연 토크 콘서트에서 여성혐오 경험을 공유하고 대응 방법을 모색할 예정이었으나 인신공격 끝에 행사를 취소했다. 지난 11월, 게임 ‘데스티니 차일드’의 제작사 ‘넥스트 플로어’는 평소 페미니즘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는 이유로 남성들의 비난을 산 일러스트 작가 송미나 씨의 작업을 삭제했다. 배우 이주영 씨는 최근 “여배우라는 단어 자체에 ‘여혐’이 내포돼 있다”는 발언을 해 남성들의 반발을 불렀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 열린 반 여성혐오 집회에 참여했ㄷ너 조미지 님이 지난 7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후기 중. ⓒ조미지 씨 제공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 열린 반 여성혐오 집회에 참여했ㄷ너 조미지 님이 지난 7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후기 중. ⓒ조미지 씨 제공

대학생 박진형(28) 씨는 “많은 남성들은 ‘메갈리아’를 필두로 최근 증가한 페미니스트들이 남성과 여성으로 편을 가르고, 남성 전반을 싸잡아 ‘한남충’이라며 모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 던지는 문제 제기에 공감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남자라서 억울하게 공격당하고 있다’며 반감을 갖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젠더 연구자 김혜진 씨는 “남성들은 보통 살면서 젠더 차별과 여성혐오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다. 익숙한 남성중심적 가부장제 질서에 안착한 그들에게 페미니즘의 목소리는 불온한 ‘남성혐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성차별은 이제 다 사라졌는데 요새 여자들 참 이기적이냐, 역차별이다’라는 생각으로 쉽게 기운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내년에도 ‘메갈 딱지’ 논란은 계속될 것이고, 더 첨예해질 것”이라고 봤다. 그렇지만 “숱한 폭력과 자기검열 요구에도 굴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인 페미니스트들 덕에 한국 사회는 성폭력과 여성혐오, 각종 차별에 대해 조금씩 더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인식의 변화가 젠더 관련 법제도, 사회문화적 안전망 구축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게 새해 페미니즘의 과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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