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폭력은 어떻게 한 여자를 죽였나
디지털 성폭력은 어떻게 한 여자를 죽였나
  • Lea·페미니스트
  • 승인 2016.12.23 23:07
  • 수정 2016-12-29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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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불법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은 공식 폐쇄됐지만, 온라인 공간의 ‘디지털 성범죄’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반대 운동을 펼쳐온 페미니스트 Lea님이 지난 12월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 전문을 본인 허락 하에 싣습니다. 글에 대한 의견은 saltnpepa@womennews.co.kr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편집자주>

 

수많은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의 신상은 지금도 온라인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구글 검색 캡처
수많은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의 신상은 지금도 온라인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구글 검색 캡처

어떤 여자의 섹스 동영상이 유출됐다. 신상이 털리는 데에는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녀의 학교 앞에서는 그녀처럼 걸레 같은 년은 강간해야 한다는 남자들이 와서 기다리고, 핸드폰에는 미친 듯이 전화와 욕 메시지가 온다. 여자는 학교를 자퇴한 후 집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겨우 1x 살인 아이 얘기다. 한 생이 멈췄다. 너무 미안하지만, 미안하지만 우리와 함께 싸워보지 않겠냐고 묻는 말에 그 애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잘못한 거 같아요. 제가 몸을 함부로 굴려서 벌을 받은 것 같아요. 이미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던 후였다.

거기서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너를 보호해 줄 힘도 없는 주제에 싸워보자고 말하는 우리가. 재판 과정은 네가 최고의 컨디션을 갖고 있어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더러울 것인데, 아파서 제정신이 아닌 네게 감히. 성인 여성들도 '증거 영상'을 본 남자 경찰의 눈빛 같은, 작고 거대한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곤 하는 걸 알면서도 말을 꺼낸 우리가 너무 죄스러워. 살아남아서 이기면? 곧 배상금으로 영상을 지우는 지난한 과정이 되풀이된다. 영상을 지워주는 업체에 맡겨 놓는다고 간단히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영상 하나를 지우는데도 피해자가 사건을 상기하며 참여해야 하는 과정이 있다.

게다가 영상이 가장 폭발적으로 유포되는 타이밍은 피해자가 슬슬 돈을 다 쓸 때쯤이란 거,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재판이 끝나고 1~2년쯤 지나 월 300 정도 하는 영상 제거 비용을 거의 탕진했을 때, 야동 사이트 주인들은 하드에 저장해 두었던 피해자의 동영상을 다시 널리 퍼뜨린다. 그걸 막을 수 있는 법이 없다. 어떻게 해야 될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피해자들을 살릴 수 있을까. 이쯤 되면 그냥 자살 생각이 나고 멍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내가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와서 살인이 나쁜 것이라고 배우지 못했다. 앞으로 인권에 대해 더 공부하고 알아가겠다."라고 말할 때 그를 감싸주지 않는다. 이미 죽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의 시체 앞에서 '앞으로 살인이 왜 나쁜지 차차 알아가자. 몰아붙이지 말자.' '한순간의 실수로 가해자의 밥줄이 끊겨 버렸다' 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에는 그런 변명과 토닥거림이 가능한 것일까? 현재 살인과 디지털 성범죄가 많이 다른가? 어디가 그렇게 다르지? 피해자를 구할 대책이 있는 상황이라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여긴 그런 꽃밭이 아니잖아. 디지털 성범죄로 인해 이미 시체가 된 사람들이 보이지 않나. 몰랐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이분 돌아가셨답니다. 글 내려주세요.' 이런 유작 드립이 널리 사용되는 사회다. 유출 영상을 찾아 클릭하는 행위가 사람을 죽인다는 걸 몰랐을 리가 없다. 영상을 봤다는 이유로 비난받는걸 억울해하는 모습들을 본다. 염치가 없구나. 그런 끔찍한 짓을 하고도 자신의 삶이 평안하기를 바란단 말인가.

어느 날엔 팀원들과의 카톡방에서 언제가 가장 힘드냐는 얘기가 나왔다. 모니터링을 맡은 분이 말했다. "영상 속에서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게 느껴질 때요. 눈빛이나 몸짓에서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게 느껴질 때가 가장 아파요." 나는 심장을 잡아 찢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그 카톡을 읽는 모두가 그러했을 것이다. 우리도 사랑을 할 줄 아는 보통 사람이니까. 여자도 인간이니까.

그런 인간을 '감상'하라며 인터넷에 돌리는 너희, ‘딸감’으로 쓰는 너희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 수가 100만이든 1000만이든 보편의 범주 안에 들 수 없다. 보통 사람의 삶을 헤집어 망쳐놓은 악인일 뿐. 가해자를 연민할 시간에 그가 보통 사람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나 똑바로 봤으면 한다. '네가 나온 영상을 봤다. 수그러진 나의 그것...씁쓸함...' 이런 내용의 노래가 있다는 것만 알아도 와들와들 떨고 토하는 피해자에게도 연민을 좀 느껴보자고.

피해자의 불행한 이야기를 전시하는 게 좋기만 한 방법은 아니라는 거 안다. 하지만 가해자는 불쌍히 여기면서 '이것도 n차 가해인가요?' 하고 피해자 쪽을 조롱하는 꼴까지 보자니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어. 당신이 정말 이 고통을 알게 되면 함부로 입 놀리지 못할 거야. 미풍에 스치기만 해도 화상을 입을 정도로 약해진 몸과 마음으로, 제발 더이상 내게 상처를 주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게 될 거야.

내가 바라는 세상은 디지털 성범죄자가 지금보다 더 가혹한 대접을 받는 세상이다. 공공연히 유출 영상, 몰카 야동을 본다고 말하는 사람은 쓰레기 취급을 받고 피해자들의 눈과 귀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퇴출되는 세상. 가해자에게 제대로 된 법적 처벌을 할 수 있는 세상. 그것이 나의 따듯하고 아름다운 공동체이며, 이 이상을 위해 운동하고 있다. 두고 보자. 언제까지나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다.

1993년, 처음으로 성희롱 사건이 공론화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성희롱이 범죄로 인정받기까지 6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디지털 성범죄가 인정되려면 앞으로 몇 년이 더 걸려야 할까. 유출 영상을 업로드하고 소비하는 디지털 성범죄자들이 크게 X되는 미래가 어서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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