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100명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잡아서 질내사정을 한다’는 내용의 패러디. 일본 AV 포스터를 패러디해 논란이 됐다.
‘남성 100명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잡아서 질내사정을 한다’는 내용의 패러디. 일본 AV 포스터를 패러디해 논란이 됐다.

‘남성 100명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잡아서 질내사정을 한다’. 최근 온라인상 유행한 패러디물의 내용이다. 원본은 남성 100명이 한 여성을 쫓다가 붙잡으면 질내사정을 한다는 내용의 일본 AV다. 우 전 수석이 1~4차 국회 청문회 증인출석 요구에 불응하고 도피 의혹마저 일자, 언론과 시민이 힘을 합쳐 우 전 수석이 진상을 밝히고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자는 의도로 만들었다고 한다. 일부 언론은 이를 ‘화제의 패러디’라며 소개했다. 

“저 닭근혜 같은 년” “순시리 같은 년” 최근 한 네이버 웹툰 댓글 중 가장 많은 공감을 산 ‘베스트 댓글’들이다. 웹툰 속 여성 악역 캐릭터를 가리키는 말인데, 해당 캐릭터는 ‘여성’이라는 점 외에는 박근혜 대통령·최순실 씨와는 아무 연관이 없다.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 란에서도 비슷한 표현들이 다수의 ‘공감’을 얻는 추세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로 헌정 질서와 사회 정의가 무너진 자리를 혐오가 채우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 최순실 씨, 정유라 씨 등 이번 사태의 핵심 인물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성’ 자체를 싸잡아 비꼬고 조롱하는 말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닭년’ ‘병신년’ ‘성형중독자년’ 등 혐오 발화의 강도는 세졌고 빈도도 높아졌다. 여성과 장애인 등은 공감할 수 없는 풍자들이 다수의 호응을 얻어 널리 유통된다. 언론은 이러한 풍자들에 ‘기발한’ ‘재치 있는’ 등의 수식어를 붙여 대중에 소개했다. 

 

 

여성들은 “권력에 대한 분노와 여성혐오를 뒤섞는 일은 정의 구현이 아니라 폭력”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대학생 김현주(26)씨는 “‘우병우 잡아서 질내사정’ 패러디물을 보고 ‘잘 만들었다’ ‘원본은 어디서 볼 수 있냐’ 등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남성들이 많더라. ‘병신년’이라는 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는 방법 말고도 권력을 비판·풍자하는 방법은 많다. 혐오 콘텐츠에 더는 박수쳐 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진성(30) 씨는 “의도가 무엇이건, 사회적 소수자들을 착취하는 비판과 풍자의 방식이 과연 정당한지 묻고 싶다”며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 ‘이 시국에 엉뚱한 시비 걸지 말라’ ‘프로불편러’ ‘메갈’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의 소수자 혐오가 얼마나 보편적이고 심각한 문제인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로 드러난 부정과 무능을 ‘여성’들의 문제로만 본다면, 관료와 정치권의 부패, 정경 유착, 노동자·농민 탄압, 역사 왜곡 등의 중요한 문제들은 묻히기 쉽다.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지난달 16일 중앙대 강연에서 “여성혐오는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혐오 발화에 익숙해진 이들은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무감각하게 혐오를 재생산”한다. 여성·성소수자·장애인 등에 대한 혐오 분출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박근혜·최순실 이후’의 세상도 지금과 다르지 않으리라는 경고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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