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적인 성격서 벗어나

주체적인 캐릭터로

‘걸크러시’ 외치게 한  

2016 드라마 여성 인물

 

김혜수, ‘시그널’서 카리스마와 귀여움 넘나드는 베테랑 형사

전도연·나나, ‘굿와이프’서 매력적인 워맨스 그려내

이요원, ‘욱씨남정기’서 개저씨 상무에 시원한 한 방 날리는 ‘사이다’ 그녀

 

배우 김혜수는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 차수현 역을 맡아 카리스마 있는 15년차 베테랑 형사와 풋풋한 새내기 형사를 자유자재로 연기해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tvN ‘시그널’
배우 김혜수는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 차수현 역을 맡아 카리스마 있는 15년차 베테랑 형사와 풋풋한 새내기 형사를 자유자재로 연기해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tvN ‘시그널’

영화계가 여성 캐릭터 불모지이듯 한국 드라마에서도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여성 배우·캐릭터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해였다. ‘시그널’에서 프로페셔널하고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차수현 형사를 완벽하게 연기한 김혜수부터 ‘굿 와이프’에서 변호사와 조사원으로 분해 능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매력적인 워맨스를 그려낸 전도연과 나나, ‘욱씨남정기’에서 욱하는 성격을 갖고 있지만 의리 있고 능력 있는 옥다정 역할을 맡아 ‘개저씨’ 상사에게 시원한 사이다를 날려준 이요원까지. 올 한해 제대로 걸크러시를 보여준 그녀들을 되짚어본다.

그간 한국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 여자주인공의 캐릭터는 다소 한정적이었다. 본인이 처한 상황이 힘들고 괴로워도, 가난하고 외로워도 울지 않고 꿋꿋이 버텨내는 청순가련형 캔디. 그리고 그 옆에는 돈 많고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주인공이 있다. 신데렐라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비슷한 이야기들은 그저 그런 식상한 캐릭터를 낳을 수밖에 없었고, 여자주인공은 남자주인공의 도움을 받거나 보살핌을 받는 캔디에 발을 묶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케이블과 종편 채널이 생기면서 드라마 장르가 보다 다양해졌고, 기존의 반복됐던 이야기 틀에서 벗어나 색다른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드라마가 생겨나게 됐다. 여성 캐릭터는 더 이상 로맨스 도구로 사용되지 않아도 되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일궈나가는 인물로 존재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드라마 안에서 로맨스라는 구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 객체로 존재했던 여성들은 한정된 역할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나가고, 감정과 욕망을 드러내는 캐릭터로 탄생했다.

김혜수, 귀여움과 멋짐의 콜라보레이션

김혜수는 올해 초 1월,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 차수현 형사(장기미제사건 전담팀)로 변신해 다채로운 매력을 뿜어냈다. 미숙하면서도 열정이 묻어나는 20대 새내기 형사와 눈빛 하나, 동작 하나로 범인을 제압하는 프로페셔널한 15년차 베테랑 형사를 완벽히 연기해낸 는 오랜만의 브라운관 복귀에도 어색함 하나 없이 깊은 연기내공을 선보였다. 

극중에서 이재한(조진웅) 형사를 좋아하는 후배로 나온 김혜수는 사랑의 감정도 자유자재로 연기해 특유의 매력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20대 어리바리 새내기 형사일 때의 차수현은 풋풋하면서도 어설픈 사랑을 표현해내 사랑스러운 매력을 한껏 뽐냈다가도 실종된 이재한 형사를 10년 넘게 그리워하는 차수현은 쓸쓸한 감정연기를 통해 아련하면서도 한층 깊어진 사랑연기를 보여줬다.

능수능란하게 범인을 검거하는 카리스마 있는 형사로 걸크러시 매력을 뿜어내면서도 젊은 시절의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이중 매력을 발산한 그는 오랜만의 안방극장 복귀에도 시청자로부터 ‘역시 김혜수’라는 말이 쏟아지게 만들었다.

 

tvN 드라마 굿와이프에서 전도연과 나나는 각각 변호사와 조사원으로 분해 프로페셔널한 면모를 보여주며 매력적인 워맨스를 그려냈다.
tvN 드라마 '굿와이프'에서 전도연과 나나는 각각 변호사와 조사원으로 분해 프로페셔널한 면모를 보여주며 매력적인 워맨스를 그려냈다. ⓒtvN ‘굿와이프’

여X여 배우의 매력적인 시너지

지난 7월 tvN 드라마 ‘굿와이프’에서 전도연과 나나는 변호사와 조사원으로 등장해 각자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사랑스러운 워맨스를 그려냈다. 오랫동안 가정을 돌보다 변호사로 복귀해 법정에 서게 된 혜경은 초반에는 미숙한 면도 보이지만 의뢰인을 위하는 마음과 진심을 다해 변호하는 모습에서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준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변호사로 성장해나가는 혜경은 능력 있는 모습으로 당당한 매력을 뽐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동료 중원(윤계상)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기도 하는데, 이 대목은 특히 눈여겨볼만하다. 여자의 감정은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애를 끓게 하는 것이 한국드라마의 암묵적인 규칙이라면 규칙일까. 하지만 혜경은 그런 공식을 단박에 깨고 자신의 욕망과 사랑의 감정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나나는 배우로서는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굿와이프’에서 세밀하고 차분한 내면연기를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극중에서 능력 있는 조사원으로 분한 그는 상황에 따라 이미지를 바꾸며 다채로운 팔색조 매력과 함께 프로페셔널한 면모를 보여줘 ‘걸크러시’라는 말을 절로 내뱉게 만들었다.

둘은 떨어져 있을 때도 각자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산하지만 함께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두 캐릭터가 자아내는 미묘한 어울림은 워맨스를 그려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원작에서 양성애자로 등장하는 나나의 캐릭터로 인해 둘의 어울림은 더욱 로맨틱한 케미를 자아냈다.

 

JTBC ‘욱씨남정기’에서 이요원은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하는 옥다정 캐릭터를 연기해 개저씨 상무의 갑질 횡포를 비롯해 각종 부당한 일에 맞서며 시원한 ‘사이다’를 날렸다. ⓒJTBC ‘욱씨남정기’
JTBC ‘욱씨남정기’에서 이요원은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하는 옥다정 캐릭터를 연기해 개저씨 상무의 갑질 횡포를 비롯해 각종 부당한 일에 맞서며 시원한 ‘사이다’를 날렸다. ⓒJTBC ‘욱씨남정기’

능력 끝판왕, 할 말은 한다!

JTBC 드라마 ‘욱씨남정기’에서 옥다정 역할을 맡은 배우 이요원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욱’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그래서 별명도 욱다정이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접대문화에 진저리를 치며 “접대는 절대 안 된다!”고 못박아두고, 부당한 업무지시는 칼 같이 거절하는 그는 할 말은 하고 사는 ‘사이다’ 성격이다.

수많은 히트상품을 제조하며 화장품 기획자로 업계 트렌드를 이끌며 최연소 팀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옥다정은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똑 부러진 일처리로 승진 1순위임에도 두터운 유리천장과 ‘개저씨’ 김상무의 끊임없는 갑질 횡포는 옥다정의 ‘욱’을 최고치에 다다르게 만든다. 

갑질을 일삼는 김상무에 질려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그는 러블리 코스메틱이라는 하청업체로 들어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일궈나간다. 대기업에 맞서 러블리 코스메틱을 튼실한 기업으로 이끌어나가는 그의 모습에선 당당한 리더의 매력이 물씬 풍긴다. 주어진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거침없이 삶을 펼쳐나가는 옥다정이야말로 ‘걸크러시’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90년대 대중문화에선 이미 페미니즘적 도상이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2000년대 들어 퇴행했다”며 “로맨스, 멜로를 중심으로 한 한류 드라마에서 신데렐라, 캔데렐라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여성 캐릭터가 퇴보했다”고 짚었다. 

그래서 현재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은 새롭게 등장한 인물이라기보다는 “90년대를 대표했던 멋진 언니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황 평론가는 “‘굿와이프’에서 전도연 캐릭터는 가정으로 들어갔다 가정 밖으로 나오는데, 그것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상징성을 가진다”며 “사회로 나와 훌륭하게 일을 수행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전도연은 신데렐라, 캔데렐라, 줌마렐라에 식상함을 느끼던 시청자들에게 큰 해방감을 안겨줬다”고 평했다.  

황 평론가는 보다 다양한 여성 캐릭터와 드라마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드라마 제작환경과 제작자의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고 짚었다. 현재 드라마를 제작하는 PD나 총괄국장 등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은 대개 남자들이다. 그는 “지금 젊은 세대는 페미니즘 욕구를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드라마 제작자나 PD는 변화하는 시청자의 니즈를 잘 반영해야 할 것”이라며 “내년에는 주체적인 여성캐릭터, 페미니즘을 반영한 드라마가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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