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순이’ 최순영이 ‘탄핵된 영애’ 박근혜에게 “역사 앞에서 참회해야”
‘공순이’ 최순영이 ‘탄핵된 영애’ 박근혜에게 “역사 앞에서 참회해야”
  • 부천=박길자 기자
  • 승인 2016.12.14 14:55
  • 수정 2017-07-09 2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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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무역 재판 ‘재심 청구’

내년 1월 20일 판결 “무죄 확신”

 

여성과 노동이 씨줄,

지역과 교육이 날줄로

평생을 사회운동가로

YH 노조 ‘영원한 언니’

 

“YH무역 사건이 이미 복권됐는데 왜 재심을 청구했냐고요? 현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고생하고 있어요. 37년이 지났고 복권도 됐지만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아야죠.” 경기 부천시 먹자골목 내 사무실에서 만난 YH무역 노조지부장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부천=이정실 사진기자
“YH무역 사건이 이미 복권됐는데 왜 재심을 청구했냐고요? 현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고생하고 있어요. 37년이 지났고 복권도 됐지만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아야죠.” 경기 부천시 먹자골목 내 사무실에서 만난 YH무역 노조지부장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부천=이정실 사진기자

‘여성이 세상을 연다’

경기 부천시 신중동역 근처 먹자골목에 있는 최순영(63) 전 민주노동당 의원의 사무실에 들어섰더니 고 신영복 교수의 손글씨 작품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후원회원인데 언젠가 뭘 해주고 받은 작품”이라는 최 전 의원의 말을 듣고 나니 여성과 노동이라는 두 축이 그의 삶을 관통했다는 사실이 새삼 깨달아졌다.

여성노동자들이 경제성장 주역

여성과 노동이 씨줄이라면, 지역과 교육은 날줄로 엮여 그의 시간을 지배했다. 네 가지 문제를 개선하느라 국회도 가고, 거리도 휘젓고 다니며 평생을 사회운동가로 살아왔다. 희끗희끗한 은발의 그는 예나 지금이나 도통 ‘투사’ 같지 않다. 늘 그렇듯 편안했고 정겨웠다.

당초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난 9일 만나기로 했었다. 최 전 의원은 이날 재판을 다녀오느라 내리 바빴다. YH무역 여성노동자들과 그의 남편인 시민운동가 황주석(2007년 작고)씨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재심청구 두 번째 재판이 열렸기 때문이다. 내년 1월 20일 판결을 앞둔 그는 무죄를 확신했다. 사건 발생 32년이 흐른 2012년 이미 김경숙 열사 유가족, YH무역 노조원 24명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해 각각 1000만~4000여만원씩 배상받았다. 이번 재심 청구는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없어졌으니 이 법에 따라 이뤄진 판결은 잘못됐다는 것을 국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것이다.

“복권이 이미 됐는데 왜 재심을 하느냐고요? 아직도 현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고생하고 있어요. 37년이 지났고 복권도 됐지만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아야죠.”

그는 당시 김경숙 열사의 모친과 함께 손해배상금 전액을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 제정의 종잣돈으로 내놨다. 김경숙 추모 사업을 하다 한국여성노동자회를 만든 주역 중 한 명인 그는 올해 김경숙상을 받은 청주시노인전문병원분회 돌봄노동자들에 대해 “서류 심사를 하느라 850일간의 투쟁사를 보니 더 고민할 것도 없더라”며 웃었다.

그가 국회의원이었던 시절, 2004년 3월 한나라당의 새 대표로 선출된 박근혜 의원에게 띄운 공개편지는 큰 화제를 낳았다. 제목은 “‘공순이’ 최순영이 ‘영애’ 박근혜에게”였다. 아래는 일부 내용이다.

 

(……) 님께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당신이 잘 꾸며진 청와대 뜨락에서 국내외 귀빈을 만나고 ‘영애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던 동안, 당신과 같은 또래였던 우리들은 얼마 안 되는 돈을 받기 위해 하루 종일 공장 먼지를 마셔야 했습니다. 당신 아버지가 철권을 휘두르며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동안 우리 아버지들은 가족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평생을 노동해야 했습니다.

당신 아버지가 군대·경찰·관료·재벌들과 함께 ‘5개년 경제 계획’을 밀어붙이는 동안 내 아버지 또래의, 내 또래의, 그리고 내 동생 또래의 노동자들이 죽어나갔습니다. 당신 아버지의 집권 시절 이뤄진 산업화·근대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통계 작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 저는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산업화 세력이라는 표현에 심한 거부감을 느낍니다. 청춘을 산업화에 바친 ‘산업 전사’의 한 사람으로서, 기업과 국가의 부를 창출하기 위해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조건에 시달렸던 근로자의 한 사람으로서, 남의 노동에 기생하지 않고 자기 노동력에 의지해 힘껏 일했던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당신이 말하는 ‘경제 발전의 주역이 박정희와 3공 세력’이라는 주장에 모멸감을 느낍니다.”

-그때 이런 편지를 보낸 이유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은 박정희가 한 것이 아니라 여성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이룬 것이죠. 이들의 임금 착취로 경제성장이 이뤄졌으니까요. 유신정권 하의 박정희 전 대통령, 그에게 기생한 기득권 세력이 장기집권을 위해 학의 목을 가진 육영수 여사가 내조를 잘하고 온화하다는 이미지를 연출했고, 그 모델이 맏딸인 박근혜에게 넘어왔어요. 계속 옷만 갈아입은 채 같은 사람이 변신한 거죠. 누가 대통령이 되든 카리스마를 갖고 유신 잔재를 청산해야 합니다.”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은 여성 정치세력화에 오래 천착해왔다. 최 전 의원이 고 신영복 교수의 손글씨 ‘여성이 세상을 연다’를 보여주고 있다. ⓒ부천=이정실 사진기자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은 여성 정치세력화에 오래 천착해왔다. 최 전 의원이 고 신영복 교수의 손글씨 ‘여성이 세상을 연다’를 보여주고 있다. ⓒ부천=이정실 사진기자

모범생 ‘공순이’ 투사가 되다

비슷한 동년배인 박 대통령에게 지금 다시 편지를 보낸다면 어떤 내용일지 물었다. 그는 대통령이 한 말을 빗대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자 “피눈물 난다는 게 어떤 말인지 알 것 같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눈물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것 같았어요. 박 대통령은 어린 나이에 청와대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자기 삶이 만들어졌어요. 청와대가 자기 집인줄 알았으니 대통령 선출을 집을 되찾은 걸로 이해한 거죠. 이제라도 역사 앞에서 참회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끝내 고집을 부리고 감옥에 가게 된다면 나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YH무역 사건은 그의 삶을 바꾼 이정표다. 그가 가발을 생산하던 YH무역에 입사한 것은 17살 되던 해인 1970년. 기술이 좋은 편이라 하청 공장을 차릴 생각을 하던 착실한 ‘공순이’는 어떻게 노동운동가가 됐을까.

“20대 때 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인생이 바뀌었어요. 크리스찬아카데미 교육 과정 중 비문을 쓰라고 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 인생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노동자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되잡았어요. 노동자로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미력이나마 기여해야겠다, 노동자와 함께 살겠다는 다짐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죠.”

박정희 정권이 민주노조를 짓밟기 위해 단행된 직장폐쇄에 항의한 여성노동자들의 농성은 유신독재의 붕괴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스물여섯살의 YH무역 노조지부장으로 투쟁을 이끈 그는 자신을 ‘언니’라 부르던 여성 노동자들의 희망과 절망을 함께 나눈 영원한 노동운동의 ‘언니’다.

최 전 의원은 83년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87년 전국여성노동자회 결성, 84년 광명에서 전국 최초의 비영리 탁아시설인 보람탁아소, 1989년 부천 튼튼이 아가방‧부천여성노동자회 등을 만들어 여성과 가족 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와 함께 부천에서 아파트 자치와 부녀회 운동을 주도하면서 91년 부천시의원으로 당선돼 최초의 의정감시단인 의정지기단을 만들고 95년 시의원에 재선됐다. 담배자판기 철거조례, 촌지안주기 운동 등 지역주민의 삶에 밀착한 의정활동을 펼쳤으며 가정법률상담소 부천지부를 열어 억울하고 힘없는 여성과 시민들을 위해 뛰어왔다.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이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부천=이정실 사진기자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이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부천=이정실 사진기자

훈련된 여성, 지방의회로 보내야

요즘 그는 경기도교육청 시민감사관 일에 열정을 쏟느라 바쁘다. 내년 6월이면 임기가 끝난다. 유치원 현장 감사를 마쳤고 지금은 고교 급식 감사 중이다. 최 전 의원은 “지난해 여름 시민감사관들이 급식 감사를 나가보니 아이들이 한참 먹어야 할 성장기에 급식 질이 너무 나빴다”며 “납품업체가 영양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주니 식재료가 엉망이더라”고 했다.

친환경무상급식센터를 운영했고, 부천시 의원 시절 국내 최초로 학교무료급식운동을 시작한 그로선 고교 급식 문제가 여태까지 심각한 게 속상한 눈치였다.

“시의원 후보 때 처음 학교급식 문제를 공약으로 내걸었어요. 그때는 의무교육인데 학교급식시설을 학부모들에게 돈을 받아서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부천시교육청 지원을 받아 무료 급식을 하겠다고 공약했지요. 학부모 강연을 하는데 무려 200명이 모였어요. 학교급식시설에 관한 조례 모임을 만들어 의무교육인데 왜 학교급식시설을 부모 돈으로 지어야 하느냐고 문제제기를 하고 동료 시의원들에게 제안했습니다. 그러면서 여론이 확산됐죠.”

-2000년 민주노동당 부대표가 되면서 중앙정치 활동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안 하겠다고 했어요. 지역에서 운동하니 민주노동당을 지원하는 것 아니냐고 했죠. 그런데 선배들이 ‘여의도에서 역할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권하더군요. 빈민운동하던 김혜경 관악구의원과 함께 부대표로 영입됐고, 2004년 비례대표로 당선됐어요. 그때 세비는 민주노동당에 내고 우리는 노동자 평균임금 180만원을 받았어요. 당시는 신선했죠. 2년 후에 230∼240만원인가 올랐어요(웃음).”

최 전 의원은 올해 창립 20돌을 맞은 경기여성연대 공동대표와 전‧현직 여성 의원들의 모임인 한국여성의정 이사도 맡고 있다. 여성 정치세력화는 그가 오랜시간 천착해온 화두다. 최 전 의원은 최근 한국여성의정 지원을 받아 부천시 여성들을 상대로 정치 교육을 마쳤다. 여성 정치세력화의 일환으로 10강좌를 교육했다.

“여성 할당제 30%는 이뤄져야 하지만 왜 여성이어야 하느냐는 의문부호가 있어요. 숫자만 30%를 채우는 건 의미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딱 그 짝 아니겠어요? 여성이 소외받고 차별받기 때문에 문제가 있어요. 이 문제를 제대로 풀려면 여성이 국회나 지방의회에 입성해야 한다는 분명히 논리가 있어야 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들을 훈련시켜야 한다는 거죠. 변화를 이끌어내는 여성이 돼야 합니다.”

-일부 지방의회는 이미 여성 의원 비율이 30%가 넘었어요.

“부천, 고양은 이미 30%가 넘었어요. 그런데 여성들의 진입 만큼 지방의회가 발전됐느냐 평가했을 때 의구심이 있어요. 우선 정당 공천에 문제가 있어요. 국회의원들이 자기 심부름 잘해주는 사람을 공천하는 행태는 사라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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