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체 여성 대출 규모 1년새 두 배 늘어

사채업자 “유흥업소 소개해줄테니 갚아라”

“‘여성우대대출’은 사기...약탈적 대출 강력 규제해야”

 

여성우대대출, 주부안심대출 등 여성을 겨냥한 고리 대부업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여성우대대출', '주부안심대출' 등 여성을 겨냥한 고리 대부업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박규영 디자이너

소득이 없거나 신용이 낮은 여성을 노리는 대부업과 사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여성을 우대한다는 식의 마케팅은 사실상 속임수지만 이를 규제할 방안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원금 상환은 물론 이자 변제도 감당하기도 어려워 더 큰 빚을 지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현행법으로는 대출을 막는 규제가 약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상반기 ‘여성을 위한 대출’을 표방하며 수년째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는 대부업체들의 대출액이 급증했다. 6개월 간 러시앤캐쉬(아프로파이낸셜대부), 산와대부, 리드코프 등 사금융권 상위 10개 대부업체의 여성 대출잔액은 3조64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전체 여성 대출잔액인 2조9096억원보다 1546억원이나 많다. 6개월분을 단순 비교하면 110% 이상 증가한 것이다.

제1금융권 대출은 별다른 변화가 없다. 국민·신한·우리은행 등 시중 은행의 올 상반기 여성대출액은 5조343억원(23만2194건)으로 지난해 말 대출액 12조 1,683억원(59만9546건)의 41% 수준에 그쳤다. 

정부에 등록하지 않은 불법 사채시장은 규모를 가늠할 수 없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많은 원룸 밀집지역에서는 명함과 전단지 형태의 사채 광고가 집중적으로 뿌려지고 있어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것으로 예측해볼 수 있다. 사채 광고에 나온대로 전화를 걸면 이들은 선이자를 뗀다. 또 이자율을 속여 법정 한도인 27%를 넘지 않는다고 설명하지만 실제 복리로 계산하면 100%가 넘는 경우가 많고 2000%까지 붙는 피해 사례도 있다. 또 성형외과와 사채업자가 결탁해 여성들에게 성형과 일자리를 미끼로 대출을 권하는 경우도 있다.

성형대출 피해자들을 면담 조사한 반성매매인권단체 이룸은 최근 토론회에서 실제 여성 대출 사례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혼 후 주거와 생활이 어려워진 여성 B씨는 인터넷으로 일자리를 알아보다 한 업체에 연락하자 ‘이사’라고 밝힌 사람에게서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이사는 여성우대대출을 받아 성형을 하면 유흥업소에서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설득하며 성형외과와 성형플래너를 소개했다. 성형플래너는 성형수술비 2300만원을 2000만원으로 할인받게 해주겠다며 대부업체 두 곳을 소개했다. 대부업체는 2000만원 중 1400만원은 성형외과로 바로 이체되었다고 하며 B씨에게 이체된 600만원은 성형외과에 현금으로 지불했다. 각각 공증을 작성했으며 1400만원은 이자를 포함한 금액 연 34.9%인 18,888,600원으로 작성했다. 

대부업체가 여성을 집중 공략하는 이유는 여성 대출 수익률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금융정의연대 강홍구 사무국장은 “통계상 여성이 상환을 좀 더 잘하고, 특히 수도권에 거주하는 20~30대 여성이 특히 성실하게 상환한다. 도주나 연락 두절로 떼이는 경우도 적다”라고 말했다.

사금융업체에 대출을 할 만큼 자금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상환은 여성이 왜 더 잘할까. 추심에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에서 여성대출과 남성대출을 각각 검색한 결과 여성대출에만 각종 추천검색어가 뜨고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여성대출'과 '남성대출'을 각각 검색한 결과 여성대출에만 각종 추천검색어가 뜨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맹 강형구 금융국장은 “유명 대부업체들도 추심에 문제가 많다. 이자 납입이 하루만 늦어져도 인간적 모멸감을 주는 말을 하고 검은 양복 입은 건장한 남성들을 집 앞에 계속 세워두기도 한다. 실제 부당하게 겪는 피해 사례는 많지만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민원 제기를 못하다가 참을 수 없는 한계 상황이 돼서야 도움을 요청하기 때문에 피해 실태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룸은 “추심할 때 가족이라든가 사람에게 연락해서 본인 채무 상환 압박, 집이나 직장에 연락해서 전화하고 찾아와서 압박하면 남성에 비해서 여성이 부담을 더 크게 느낀다. 특히 야간에 자주 전화를 하는 게 불법추심이지만 여성들은 더욱 공포를 느낀다”고 전했다. 사채의 경우 “네 딸년 잘 간수해라”는 식의 위협부터 성적인 욕설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유흥업소를 소개해줄 테니 돈벌어 갚아라”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

더 문제는 ‘여성우대대출’, ‘여성안심대출’, ‘주부안심대출’, ‘여성비밀보장’이라고 광고하는 이들 대부업체들이 실제로 여성을 우대하거나 특화되지 않았고 오로지 대출을 늘리기 위해 사용하는 상술일 뿐이라는 점이다.

채무자 구제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주빌리은행의 김지희 사무국장은 “여성 대출은 절대 여성을 위한 대출이 아닌데 현혹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과 남성을 구분한 금융은 있을 수 없다. 여성이 대출할 때 당사자의 신용도가 아닌 배우자나 가족의 변제 능력을 따지므로 일종의 사기”라고 설명했다.

현행 대부업법에 따라 채무자의 변제 능력을 넘어서는 대부 계약 체결을 금지한 규정이 있음에도 사문화돼있어 이를 강화해 약탈적 대출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원민경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성형대출 토론회에서 “대부업법의 과잉대부금지규정에 따라 대부업자는 대부 계약 체결 시 채무자의 소득, 재산, 부채 상황을 증명서류를 받아 파악하도록 돼있지만 위반 시 과태료가 2000만원에 불과해 강화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대부업체의 추심에 따른 피해와 인권 침해 상황, 부당한 수익 창출 측면을 고려할 때 과태료만으로는 규제 실효성을 거둘 수 없으므로 형사처벌 조항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또 최근 채권추심 업무 가이드라인을 강화해 1일 3회에서 2회로 추심 횟수를 규제했다고 하지만 별 의미가 없다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또 대부업 광고 전반을 폭넓게 규제하는 법안은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여성대출’ 광고를 특정해서 규제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없다. 여성대출 광고를 제한할 경우 업체들이 표현의 자유, 영업 자유를 침해한다고 반발할 것이라고 관계자는 전했다.

대출 이자율을 낮추거나 대부업체를 규제하는 차원이 아닌 사회·경제의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단기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강홍구 사무국장은 “여성대출 같은 대부업체, 사채 이용자들은 과소비 문제가 아니라 생활비, 주거비, 교육비 등 기본적인 생활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경기가 더 나빠지면 대출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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