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연애를 말하다②] 섹스 말하는 여자가 듣는 말
[성평등 연애를 말하다②] 섹스 말하는 여자가 듣는 말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6.12.12 10:22
  • 수정 2016-12-14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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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화네트워크 주최 2016 청년포럼

섹스·낙태·데이트폭력·무성애 등

연애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

페미니즘 관점에서 논의

 

12월 10일 서울 대학로 아츠플레이씨어터에서 열린 ‘2016 청년포럼’에 참석한 관객들이 연사들의 ‘사이다’ 같은 강연이 끝나자 박수를 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12월 10일 서울 대학로 아츠플레이씨어터에서 열린 ‘2016 청년포럼’에 참석한 관객들이 연사들의 ‘사이다’ 같은 강연이 끝나자 박수를 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페미니즘과 더치페이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관객)

“100대 60이 답이에요(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60만원 밖에 못 받는다는 뜻으로 성별 임금격차 수준을 뜻한다). 성별 임금격차 문제를 빼놓고는 더치페이를 얘기 할 수 없어요. 데이트 상대가 더치페이를 요구한다면 먼저 여성의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같이 운동해달라고 말씀하면 좋을 듯 해요.”(은하선씨)

12월 10일 오후 서울 대학로. 200여명이 자리를 가득메운 아츠플레이씨어터는 이들이 내뿜는 열기로 후끈했다. ㈔여성‧문화네트워크(대표이사 박혜란) 주최로 열린 ‘2016 청년포럼’ 자리다. ‘연(年)애(愛)를 말하다’를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은 ‘더치페이’처럼 여성과 남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부터 성평등 의식 부재로 생기는 청년들의 인간관계까지 연애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분석하고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번 포럼은 시작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참가 신청을 받기 시작한지 2시간 만에 200석 전석이 매진됐다. 연애라는 흥미로운 포럼 주제와 더불어 연사들에 대한 기대감이 포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포럼엔 페미니즘 액션그룹 ‘강남역 10번 출구’ 운영자인 이지원씨, 『이기적 섹스』의 저자 은하선 작가, 무성애자 활동가 케이(K)씨, 페미니즘 잡지 「젊은여자」 발행인 홍승은씨, 혐오발언을 연구하는 남성 페미니스트 유민석씨, 여성주의 활동가 신유진씨, 독립잡지 「월간잉여」 편집장 최서윤씨 등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참여했다. 포럼 사회는 페미니스트 칼럼니스트인 손희정 ‘여/성이론’ 편집위원이 맡았다. 포럼 사회는 페미니스트 칼럼니스트인 손희정 ‘여/성이론’ 편집위원이 맡았다.

무대에 오른 연사들은 “한국사회는 시대를 정화시키는 국면에 와있다. 그러나 이 같은 거대한 변화를 현실화시키는 것은 구체적으로 일상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한다”며 ‘정상’이라는 사회적 기준과 강요된 감정에서 해방될 것을 권했다.

 

은하선 작가가 10일 서울 대학로 아츠플레이씨어터에서 열린 ‘2016 청년포럼’에서 ‘나는 섹스를 말하는 여자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은하선 작가가 10일 서울 대학로 아츠플레이씨어터에서 열린 ‘2016 청년포럼’에서 ‘나는 섹스를 말하는 여자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나는 섹스를 말하는 여자다>

『이기적 섹스』의 저자 은하선 작가

섹스에 대해 말하고 글을 쓰는 은하선 작가는 ‘섹스 칼럼니스트’라고도 불린다. 그는 지난해 『이기적 섹스』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은 작가는 자신이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내가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섹스에 대해 말하면 신기한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며 “섹스를 말하는 여자가 드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은 작가는 그동안 온라인에서 받은 모르는 이들로부터 받은 메시지와 자신을 소개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통해 섹스에 대한 한국 남성의 이중잣대를 꼬집었다.

은 작가는 섹스에 대해 말을 하는 순간 부터 수 많은 욕설에 시달려야 했다. ‘개같은 남자만 만나고 다녔는갑네. 불쌍하다’ ‘섹스를 얼마나 했으면 저럴까, 그것도 여자가. 에휴, 답없는 현실이다’ ‘절벽 가슴’ ‘레즈의 괴변’ 등의 수많은 악성 댓글을 받았다.

다짜고짜 모르는 남성들로부터 ‘섹스를 하자’는 메시지도 받았다. 은 작가는 “‘건장한 체격이고 조루는 아니’라며 ‘섹스 하자’고 무작정 메시지를 보내는 남성을 보면 ‘정말 답이 없구나’ 싶다”면서 “섹스에 대해 말하는 여성이라면 언제든지 자신을 향해 다리를 벌려줄 거라 믿는 것인가 싶다”고 지적했다.

더러 칭찬을 하는 메시지도 있다. ‘여성으로서 용기있는 모습에 더욱 매력이 넘쳐보인다’ ‘승승장구 하시길 바란다’라는 남성들의 글에 대해 은 작가는 보람이나 기쁨보다 화가 치민다고 했다. 그는 “남성의 칭찬은 섹스를 말하는 여성은 신여성, 말하지 못하는 여성은 구여성을 구분짓는 것”이라며 “칭찬 이면에는 ‘내가 원할 때 다리를 벌려줄 여성이 많아질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비판했다.

섹스를 말하는 여성은 욕을 먹고, 성희롱을 당하고, 때로는 숭배받는다. 여성이 섹스를 말하기 위해선 이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섹스를 말하는 남성은 어떨까. 남성은 여성과 달리 공공장소에서도 섹스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없이 말한다. 은 작가는 모교에서 16년간 ‘성의 이해’라는 강의를 진행한 남성 강사를 예로 들었다. 이 강사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신이 보지 못한 포르노를 가져오면 에이플러스 점수를 주겠다거나, 직접 촬영해도 좋다는 말을 했다. 또 성폭력은 남성의 고유한 본능이라는 내용을 강의했다. 은 작가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이 강의에 대해 문제제기해 결국 폐강시켰지만, 이후에도 총학생회가 ‘꼴페미’들 때문에 강의가 폐강됐다면서 강사를 옹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한 70대 남성 연예인은 기혼자이면서도 방송에서 “애인이 있다”며 당당히 외도 사실을 밝히고, 손녀뻘인 49살 연하의 여성과 섹스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 어린 여성과 섹스하는 것을 ‘살아 있는’ 건강한 남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다뤘다. 또 방송에선 70대 남성 가수가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어린 여성을 성희롱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방영하기도 했다.

은 작가는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는 여성이라고 해서 깨이지 않았거나 용감하지 않은 여성은 아니다”라며 “왜 여성들이 섹스를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는 지와 섹스를 대해 말하는 여성이 어떠한 취급을 받는 지에 대해 더 많이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숨은 남성과 드러내는 여성, 검은 시위>

홍승은 잡지 ‘젊은 여자’ 편집장·인문학카페36.5 대표

페미니즘 잡지 ‘젊은여자’를 펴낸 편집장 홍승은씨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낙태(인공임신중절)와 관련한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기사가 온라인에 공개되면서 그에게는 ‘낙태 커밍아웃 홍승은’이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홍씨는 “‘커밍아웃(coming out)’이라는 말 자체에서 낙태가 금기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커밍아웃은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낼 때 주로 쓰인다. 이성애자가 자신의 성적 지향을 자연스럽게 누리는 것과 달리, 성소수자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위험해진다. 홍씨는 “커밍아웃은 기울어진 권력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언어이고,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 위한 정치적 언어”라며 “나의 낙태 경험을 드러내는 일은 커밍아웃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금기를 건드리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낙태 경험을 공유한 후 주위 사람들로 ‘한국사회는 아직 보수적인데 네가 걱정된다’ ‘그래도 용기 내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기사에는 ‘피임도 제대로 안하고 즐기기만 하겠다는 것이냐’ ‘낙태충’ ‘살인자’ ‘엄마, 안녕’같은 댓글이 달렸다.

한국 사회에서 낙태는 불법이다. 그러나 법적, 사회적 배제 분위기와는 달리 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하거나, 임신 가능성 때문에 마음을 졸였고, 임신 테스트기를 하고 사후피임약을 먹는다. 홍씨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낙태 경험을 통해 여성에게만 책임이 전가되는 낙태를 둘러싼 사회 인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홍씨는 “저희 엄마는 저와 동생을 낳고도 세번 임신을 했고 세 번 낙태했다”며 “두 번째 수술 후 루프 시술을 받았는데 임신이 되자 초등학교 5학년이던 제게 한탄하며 ‘여자가 몸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홍씨의 가장 친한 친구도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 남자친구가 질외사정은 안전하다고 해서 믿었다가 임신이 된 것이다. 홍씨와 함께 산부인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나온 친구는 “내 인생 끝났어”라고 말하며 바닥에 주저 앉아 울었다.

몇 달 전 홍씨의 동생도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 동생의 남자친구는 ‘학업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수술 후 ‘잠수’를 탔다. 문제를 공론화하겠다고 하자, 유명한 페미니스트였던 남자친구의 엄마는 “큰 일을 할 아이들이, 사소한 문제로 앞길을 망치면 안된다”며 SNS에 글을 올리지 말 것을 요구했다.

홍씨는 “임신은 함께 했지만, 낙태를 하면 그 비난은 오로지 여성의 몫”이라며 “낙태죄는 여성과 의사만 처벌이 있지, 함께 섹스한 남성은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난 10월 한국에서 ‘검은시위’가 시작되면서 여성들이 그간 자기의 몸으로부터 소외당했던 여성들이 내몸이 바로 나이며, 내 몸은 불법이 아니 아니다고 외치며 우리의 권리를 외치며 연대한다”면서 “낙태가 금기시 되는 사회를 향해 ‘내 몸은 나다’ ‘내 자궁은 나의 것이다’라고 계속 외쳐서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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