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연애를 말하다①] 돌려 말하면 ‘여자어’, 솔직히 말하면 ‘남자어’?
[성평등 연애를 말하다①] 돌려 말하면 ‘여자어’, 솔직히 말하면 ‘남자어’?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6.12.12 14:26
  • 수정 2016-12-14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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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화네트워크 주최 2016 청년포럼

섹스·낙태·데이트폭력·무성애 등

연애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

페미니즘 관점에서 논의

 

12월 10일 서울 대학로 아츠플레이씨어터에서 열린 ‘2016 청년포럼’에 참여한 연사들이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12월 10일 서울 대학로 아츠플레이씨어터에서 열린 ‘2016 청년포럼’에 참여한 연사들이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페미니즘과 더치페이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관객)

“100대 60이 답이에요(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60만원 밖에 못 받는다는 뜻으로 성별 임금격차 수준을 뜻한다). 성별 임금격차 문제를 빼놓고는 더치페이를 얘기 할 수 없어요. 데이트 상대가 더치페이를 요구한다면 먼저 여성의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같이 운동해달라고 말씀하면 좋을 듯 해요.”(은하선씨)

12월 10일 오후 서울 대학로. 200여명이 자리를 가득메운 아츠플레이씨어터는 이들이 내뿜는 열기로 후끈했다. ㈔여성‧문화네트워크(대표이사 박혜란) 주최로 열린 ‘2016 청년포럼’ 자리다. ‘연(年)애(愛)를 말하다’를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은 ‘더치페이’처럼 여성과 남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부터 성평등 의식 부재로 생기는 청년들의 인간관계까지 연애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분석하고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번 포럼은 시작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참가 신청을 받기 시작한지 2시간 만에 200석 전석이 매진됐다. 연애라는 흥미로운 포럼 주제와 더불어 연사들에 대한 기대감이 포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포럼엔 페미니즘 액션그룹 ‘강남역 10번 출구’ 운영자인 이지원씨, 『이기적 섹스』의 저자 은하선 작가, 무성애자 활동가 케이(K)씨, 페미니즘 잡지 「젊은여자」 발행인 홍승은씨, 혐오발언을 연구하는 남성 페미니스트 유민석씨, 여성주의 활동가 신유진씨, 독립잡지 「월간잉여」 편집장 최서윤씨 등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참여했다. 포럼 사회는 페미니스트 칼럼니스트인 손희정 ‘여/성이론’ 편집위원이 맡았다. 포럼 사회는 페미니스트 칼럼니스트인 손희정 ‘여/성이론’ 편집위원이 맡았다.

무대에 오른 연사들은 “한국사회는 시대를 정화시키는 국면에 와있다. 그러나 이 같은 거대한 변화를 현실화시키는 것은 구체적으로 일상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한다”며 ‘정상’이라는 사회적 기준과 강요된 감정에서 해방될 것을 권했다.

 

이지원 페미니즘 액션그룹 ‘강남역 10번 출구’ 운영자가 10일 오후 서울 대학로 아츠플레이씨어터에서 열린 ‘2016 청년포럼’에서 ‘여자어(女子語) 판타지 박살내기’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이지원 페미니즘 액션그룹 ‘강남역 10번 출구’ 운영자가 10일 오후 서울 대학로 아츠플레이씨어터에서 열린 ‘2016 청년포럼’에서 ‘여자어(女子語) 판타지 박살내기’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여자어(女子語) 판타지 박살내기>

이지원 페미니즘 액션그룹 ‘강남역 10번 출구’ 운영자

‘주로 여자가 사용한다고 여겨지는 특수한 완곡어법을 통칭한다. 물론 실제로 사전에 등재돼 있는 단어는 아니다. 특성상 남자가 알아듣기 어렵다고 하며, 이는 특유의 ‘돌려 말하기 위해 선택하는 단어’가 말의 실제 의미와는 별개의 것으로 선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사용자들의 편집을 통해 개념을 정리하는 사이트 나무위키는 ‘여자어(女子語)’를 이렇게 정의한다여성의 말에는 숨겨진 본뜻이 있다는 이야기다. 미디어도 여자어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생산해냈다. JTBC 예능 프로그램 ‘마녀사냥’에서 제시한 여자어 예시는 이렇다. “이거 어때? 예쁘지?”라는 여자의 말은 “사 줘”라는 뜻이고, “오빠 그 옷 좋아하나봐”라는 말은 “그 옷 좀 입지마 XX야”라는 의미라는 식이다. 여성의 말에는 숨겨진 본뜻이 있다는 얘기다.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 운영자는 여자어에 대한 이 같은 설명에 대해 “여성 내부는 단일한 집단이 아니며, 내부를 횡당하는 다양한 축들에 의해 개별 여성들은 각자 다른 경험과 사회적 위치 속에 자리한다”며 “그러나 여자어라는 개념은 이런 내부적 차이를 무시하고 여자라는 집단을 하나의 프레임, 부정적 선입견으로 묶어냄으로서 여성성 자체를 열등한 것으로 재구성한다”고 지적했다.

완곡하게 말하는 발화 습관이 여성적 특징으로 환원된다는 점은 여성성 전반에 대한 사회의 차별적 의식을 반영한다고도 덧붙였다. 발화 습관을 포함한 여성 개개인의 문제는 여성 집단의 문제가 되는 반면, 남성 개개인의 문제는 개별 남성의 문제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지난 5월 강남역 인근에서 여성 살해 사건이 발생하자, 여성들은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여 희생자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담은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5월 강남역 인근에서 여성 살해 사건이 발생하자, 여성들은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여 희생자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담은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씨는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5월 강남역 인근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 사건 직후 드러난 일부 남성들의 반응을 꼽았다. 당시 여성들이 여성폭력에 대한 집단적 공감대를 형성했을 때 일부 남성들은 ‘남성을 범죄자로 일반화 말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우리사회가 평등하게 소통해야 여성혐오를 드러내는 여자어 환타지를 박살내고 보다 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짚었다.

이씨는 “일상의 변화, 사적인 관계에서부터 시작하는 변화”라며 “연애 관계를 포함해 사회와 유리돼 진공 속에 존재하는 관계는 없다”면서 “진정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왜곡과 편견 없는 여성성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여성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원활한 의사소통의 첫걸음은 사람의 말을 내가 원하는대로 해석하지 않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덧붙였다.

 

<연애를 권하는 사회에 반기를 들다>

케이(K) 무성애 커뮤니티 에이로그(A-LOG) 운영자·성소수자 활동가

“애인은 있어?” “애인이 왜 없어?” “연애는 언제 할 거야?” “너는 왜 연애에는 관심이 없어?”

무심코 던지는 주변 사람들의 연애 관련 질문이 불편한 이들이 있다. ‘연애정상성(Aamatonormativity, amato(사랑 받는 사람)+normativity(정상성) 합성어)’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난 성향의 사람들은 연애 권하기를 넘어 연애를 강요하는 사회와 부딪칠 수 밖에 없다.

연애정상성은 연애와 관련한 여러 종류의 규범성과 정상성을 함축한 단어다. 무성애 커뮤니티 에이로그(A-LOG) 운영자인 케이(K)씨는 연애정상성에 대해 “중심적이고 배타적이고 성적인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K씨는 무성애자이자 무로맨틱 성향이다. 무성애자는 말 그대로 어떤 상대에게도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성적 끌림을 느끼는 사람을 유성애자로 부른다. 무성애자도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경우는 유로맨틱, 그렇지 않은 경우는 무로맨틱 성향으로 나뉜다.

연애를 원하고 권하는 사회는 K씨 같은 연애정상성이라는 틀 밖의 사람들에겐 압박일 수 밖에 없다. 그는 “연애와 관련해 각종 질문을 받을 때면 연애 관계가 최상의 관계이자 수렴해 가야할 것이라고 전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전제가 다른데 연애정상성에 맞지 않는다는 설명을 매번 해야 하니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한국사회에 연애정상성이 강력하게 녹아들다보니 사람들은 연애정상성에서 벗어난 양식을 부정하면서도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반복돼 결국에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제한하게 된다”는 것이 K씨의 주장이다.

K씨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갈 삶의 방식을 정할 자유가 있다”면서 “연애정상성에 함축된 규범성이나 정상성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키려는 행태가 오히려 비정상적임을 자각해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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