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엄지원(왼쪽)과 공효진. 최근 영화 ‘미씽’을 홍보하는 자리에서 페미니즘 발언을 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배우 엄지원(왼쪽)과 공효진. 최근 영화 ‘미씽’을 홍보하는 자리에서 페미니즘 발언을 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여성 배우들의 시원한 발언이 거침없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영화 ‘미씽’을 홍보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배우 공효진, 엄지원씨는 영화 시사회장과 언론 인터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여성주의와 맞닿은 발언을 당당하게 쏟아내 여성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공효진 “영화촬영 현장은 투쟁의 현장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발동해 독립투사처럼 싸워야 했다”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 중심의 이야기도 분명 재미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엄지원 “브로맨스 너무 많이 봤다. 이젠 지겹지 않나? 여자들끼리도 케미가 있다” “남자들 피 흘리고 욕설 난무하는 영화 보느라 다들 얼마나 피곤했나.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렸고 새로운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충무로에 좋은 남자배우는 많은데 좋은 여자배우는 없다고 한다. 여자배우가 없어서 없었을까, 아니면 쓰이지 않아서 없었을까. 한 번 질문해보고 싶다” 

배우 공효진과 엄지원이 영화 홍보를 통해 드러낸 말들이다. 한국영화계는 수년간 남성 중심의 영화와 여배우 기근 현상이 계속됐다. 그간 한국영화계는 남성 주인공 위주의 액션·느와르 장르가 주를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 단독 주연의 영화는 어쩌다 한 번 나올까 말까다. 여성 영화라고 하면 시나리오가 아무리 좋아도 제작사·배급사를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여성 배우들의 한이 이제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영화판에서 뒹굴며 성차별 속에서 살아온 그들은 의도치 않았더라도 페미니즘을 체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영화 홍보꾼이 아닌 페미니즘 전도사가 엿보이는 이유다.

허민숙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지금 터져나오는 여성들의 말하기는 그동안 너무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을 것”이라며 “간간히 얘기되던 것이기도 했을 텐데 들리지 않았거나 들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성들의 말하기가 가능해진 이유는 낡고 오래된 패러다임에 균열이 오기 시작했고, 동시에 말하기가 그 균열을 가속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라며 “여러 분야에서 여성들의 말하기가 봇물처럼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다는 것은 자연질서나 법칙처럼 여겨졌던 남성중심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지난 6월 영화 ‘비밀은 없다’ 홍보를 위해 JTBC 뉴스룸에 나온 손예진씨는 “현재 남성 중심 시나리오가 많은데, 이것도 어떻게 보면 여배우들에게 일종의 억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한국 영화계에 여성을 위한 작품이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손석희 앵커는 손예진에게 남성 배우 위주의 영화계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고, 손예진은 남자 배우에 비해 여자 배우가 시나리오 선택 폭이 더 좁다고 답했다. 그는 “여성 중심의 영화를 찍고 싶다”면서 “친한 공효진과 ‘델마와 루이스’처럼 일탈을 꿈꾸는 로드무비를 찍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도 여성 배우들의 당당한 목소리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트위터리안(@sh********)은 “우리가 매일 트위터에서 여성 영화 나와야 한다고 울면서 말했는데 그걸 엄지원 급의 배우가 소리 내서 여기저기 말하고 다닌다는 게 너무 좋다”며 “힘이 난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말하기가 더 이상 힘없이 묻히지 않고 지지해줄 기반이 생겼다는 것을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발견할 수 있다. 한 누리꾼(@ha****)은 “공효진과 엄지원 두 배우가 여성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현장의 일원이자 소수자로서 문제의식을 토로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 발언을 해도 안전하며 지지를 넘어 열광해줄 대중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제 한국에도 페미니즘 지형이 깔리고 있음을 시사하며 여성들의 연대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말이다. 

이제라도 여성 배우들의 소신 담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반가울 따름이다. 허 교수는 여성들의 말하기에 대해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여성들의 자기성찰도 한 몫 했을 것”이라며 “가부장제가 칭송하는 ‘천상여자’의 패러다임에 갇혀있던 여성들이 그걸 끊고 나오게 됐고, 가부장제의 시선을 덜 두려워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연대할 여성들이 밖에 있고, 뚫고 나가면 된다는 자신감도 생겼고, 자신의 생각이 정당하고 옳다는 확신도 생기게 됐다“며 “이런 흐름이 지속될 수 있도록 언론을 비롯한 우리사회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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