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라넷 폐쇄 주도한 하예나 DSO 활동가

“소라넷과의 싸움 다들 포기하라 했지만 해냈다”

“포르노 사이트들 여전하지만, 사람들 인식 변화 보여”

올해 안에 단체 설립해 본격 활동 할 것

 

소라넷 폐쇄를 이끈 활동가들이 단체 설립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RPO(Reveng porno Out·리벤지 포르노 아웃)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지 1년 1개월, 소라넷 폐쇄 5개월 만이다. 얼굴도, 실명도 공개 하지 않고 비밀스럽게 일해왔던 그들이 대중 앞에 나서는 이유가 궁금했다. 

활동가 대표 하예나(20·활동명)씨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사무실은 조용한 주택가였다. 약속 시간보다 1시간정도 늦어졌다. 하씨는 “밤에 해야 하는 성범죄 사이트 모니터링이 길어져 오전 10시에 잠들었다”며 미안해 했다. 사무실은 방 3칸 짜리 가정집이었다. “일도 하고 모임도 갖기 위해 최근에 마련했다”고 한다. 같은 팀원으로 2달 전부터 집에 함께 산다는 아뵤(30) 씨도 함께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 전날인 27일 소라넷 측이 트위터 계정에 사이트를 다시 열 예정이라는 공지한 것에 대해 하씨의 입장부터 물었다.

“답답하죠. 몇 번 반복된 일이라 진짜인지 알 수는 없어요. 문제는 경찰이에요. 6월에 사이트를 폐쇄하면서 운영자도 독 안에 든 쥐라고, 반드시 잡을 거라고 큰소리쳤잖아요. 경찰이 해야 할 일은 사이트 하나 폐쇄하는 것보다 운영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거예요. 다른 유사 범죄자들이 활개치지 못하게 해야죠.”

하예나 씨는 지난해 10월 28일 ‘소라넷 박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소라넷 폐쇄 청원운동을 접하고 심각성을 알게 되면서다. 그곳에 올라오는 게시물들이 리벤지 포르노, 성폭행, 몰카 등 일반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이고 강간모의도 벌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평범한 일반인의 페이스북 사진 등이 성적 모욕감을 주는 이미지로 제작돼 올라오기도 했다. 이런 충격적인 사실을 몇몇 커뮤니티와 SNS만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는 먼저 트위터 등을 통해 함께 활동할 팀원들을 모집했다. 그들과 함께 소라넷에 불법적으로 올라오는 성관계 동영상과 강간모의 사건 증거들을 모았다. 뜻을 함께 한 30여명은 온라인 활동과 동시에 대중을 상대로 공론화하기 위해 대규모 길거리 시위를 열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활동을 본격화하자 트위터 팀 계정을 통해 신변을 위협하는 협박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대외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온라인에만 집중하기로 변경했다.

“협박이 계속되니 공포감 때문에 아무도 상대할 수 없었어요. 소라넷 같은 사이트들 수익이 최음제, 마약류, 불법토토 같은 광고인데 검은돈이 오가고 조폭들이 관여한다고 들었어요. 그들이 곱게 말할 리 없겠죠? 하하하. 공포를 견디지 못해 활동을 중단한 팀원들도 많아요. 나 하나 신상 털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에 찾아와서 화염병 던지고 해치겠다는 게 무서웠어요.”

 

하예나 DSO 활동가
하예나 DSO 활동가

“청와대 리볼버 게시글 즉각 수사, 강간모의는 신고해도 정보 부족 타령”

소라넷 폐쇄 과정은 팀원들에게 고통스러웠다. 스무살인 하씨는 쾌활하고 거침없다가도 한 번씩 목소리가 떨리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모니터링도 힘들지만 경찰이 협조적이지 않아 절망감도 느꼈다고 했다.

이들은 실시간 강간모의를 신고하기 위해 밤마다 불침번섰다. 글이 뜨면 남자로 가장해 채팅에 초대받아 상황을 물었다. 어렵사리 얻어낸 내용을 신고했지만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다. 왜 출동하지 않는지 묻기 위해 경찰서도 찾아갔다. 이후로 경찰 요구사항에 맞추기 위해 그들 선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경찰에 신고해 출동을 요청했지만 또다시 내용이 부정확하다며 출동에 응하지 않았다.

“경찰이 이중적이에요. 메갈리아 저수지 글, 청와대 리볼버 글이 올라왔다고 바로 출동하고 수사했잖아요. 우리는 사건 정황이 있어서 신고까지 했는데도 자꾸만 정보가 부족하다고 출동할 수 없다고 해요. 직접 신고를 해본 입장에서 내가 위험해져도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더 두렵죠.”

소라넷 폐쇄 활동과 함께 온라인 모니터링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문제의 게시물이 올라오는 국내외 포르노·강간약물·P2P사이트 등 광범위하게 조사했다. 업계 사람들도 만나고, 국회에도 실태를 알렸다. 소규모 모임에 강연도 다닌다. 활동을 하다 보니 대중의 인식 변화를 위해 언어 사용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리벤지 포르노를 전면에 내걸고 활동했지만 이제는 쓰지 말자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 엄연한 범죄인데, 마치 하나의 포르노 장르인 것 마냥 불리죠. 또 리벤지는 잘못에 대한 복수를 의미해요. 지극히 가해자 중심적인 사고예요. 피해자들을 포르노라는 말로 규정해서 2차적으로 가해하는 것이고, 피해자인 여성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대상화하는 겁니다. 술취한 여성을 말하는 골뱅이라는 단어는 여성들도 뜻을 알게 되면서 남성들이 함부로 사용하지 않게 됐죠. 은어들은 정확한 뜻이 알려지면 힘이 없어져요.”

 

소라넷 붕괴 이후에도 포르노 사이트들 활개...일반인들 인식 개선은 큰 변화

소라넷은 폐쇄됐지만 다른 포르노 사이트들은 활개치고 있다. 소라넷 짝퉁 사이트는 물론, 다른 사이트들도 폐쇄 직후 다시 운영된다. 오피OO이라는 사이트는 폐쇄될 때마다 오피OO1, 오피OO2처럼 숫자만 바꿔 연다. 이젠 오피OO17까지 나간 상황. 밤새 모니터링해서 사이트 몇 개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신고한들, 까다로운 심의를 통과한 사이트 몇 개가 폐쇄되는 속도는 디지털 상에서 복제·확산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니냐고 하자, 하씨는 대중의 변화에 주목해달라고 했다.

그들이 소라넷을 폐쇄하는 과정에서 ‘국산 야동’을 보는 것도 성범죄라고 주장하자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강압이 들어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일반적인 성관계 영상이나 몰카는 물론 ‘국산 야동’도 포르노가 아닌 디지털 성범죄라는 것이다. 등장하는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의 동영상이 무차별적으로 퍼지는 것을 과연 누가 동의하겠느냐는 논리다. 따라서 영상을 시청해 소비에 참여한 이들도 디지털 성범죄자에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에 딱풀녀, OO녀 등등 한국 레전드 영상 시리즈라고 야동이 올라온 적이 있어요. 댓글에 ‘이 동영상을 보는 행위도 범죄다, 시청강간이다’라고 말하기 시작했어요. 아직 여성들이 많긴 하지만요. 나와서 외쳐야 하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사람들이 소라넷과의 싸움을 포기하라고 했는데도 사람들이 합심해서 싸웠고 결국 정부의 관심을 이끌어내서 우리가 이겼어요. 그들에게 토템(totem·숭배되는 상징물)같았던 것이 없어졌죠.”

반면 경찰이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대응이 미흡한 것은 성범죄에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씨는 지적했다.

“기관에 인력이 부족해서 대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입장은 이해해요. 문제는 신고를 하면 ‘진짜 강간하는 게 아니라 연출한 거다’, ‘장난으로 강간 모의하는 거다’라는 식으로 가해자를 변호하는 말을 하는 거예요. 오히려 우리한테 너무 예민하다거나 정신적으로 이상한 아이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것을 느낄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제도적인 문제 이전에 성범죄에 관한 인식과 감수성에 변화가 필요해요.”

체계적인 활동 위해 단체 설립키로

모두 여성들인 활동가들은 지금까지 각자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자율적으로 작업해왔다. 직장인, 대학생, 대학원생 등 다양하고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다. 호주, 영국에도 있다. 대표를 맡고 있는 하씨가 활동가들에 대해 아는 정보는 이것뿐이다. 채팅으로 대화하면서 서로의 신상은 물론 이름도 묻지 말기로 했다. 개인정보 노출을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 심지어 소라넷이 폐쇄되던 6월 6일 이들은 파티를 열어도 모자랄 상황이었지만 만나지 못했다.

“소라넷이 폐쇄되면 모여서 샴페인 터뜨리자고 했어요. 그런데 막상 4명만 참석 가능하다는 거예요. 특히 잠적하신 분도 있고, 모임을 원치 않기도 했고요. 특히 모니터링 맡은 분들은 지금도 뵙고 싶어요. 기사를 보면 꼭 연락 주세요.”

이들은 이제 정식 단체를 설립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더이상 몇몇 개인의 봉사와 희생만으로는 일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씨의 경우 아르바이트로 활동비를 충당했다. 회사 다니는 팀원은 새벽에 잠 안자고 모니터링 후 출근한다. 그가 모니터링, 피해자 지원, 교육 등 활동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시스템화하기 위한 돌파구로 상근활동가와 운영비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릴 쯤 단체를 설립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단체명은 RPO 대신 DSO(Digital Sexual Crime Out·디지털 성폭력 아웃)으로 정했다. 올해 안으로 단체 등록을 하는 것이 목표다.

“단기적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평생을 싸워가야 할 사회 문제예요. 손놓으면 더 심각해질 테니까요. 대학도 안가고 활동을 시작했더니 학교 가서 하라. 취미로 하라면서 걱정하시죠. 저는 대학 공부는 나중에 정말 하고 싶은 게 생길 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아마 이쪽 분야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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