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 ‘지분’ 당당히 요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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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싣는순서 >

빈곤여성 생존권

전업주부 경제권

직장여성 노동권

가사노동 기여도 GDP대비 25% 불구

상속세등 차별조항 많아 평등 걸림돌

전업주부의 일터는 가정이다. 하지만 이들의 가사노동이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가사노동을 계량화해 노동가치를 평가하는 작업은 간혹 있었지만 노동가치를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경제적 권리를 인정하는 데는 인색했다.

97년 재정경제원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주부의 무급가사노동가치는 연간 1백36조원으로 국내 총생산(GDP) 대비 26%에 달했다. 이후 유니텔 주부사이트인 아이주부(ijubu@unitel.co.kr)에서 99년 주부 가사노동의 GDP기여도를 추정한 결과 25.1%로 나타났다.

주부들의 이러한 경제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과연 주부들은 자신의 기여분에 대한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을까? 또 사회는 이를 정당하게 평가해 주고 있는가?

문서상으로 차별이 없고 실생활에서 대부분의 전업주부들이 많은 양의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겠다는 ‘주장’에는 왠지 떳떳하지 못하다.

직장여성이 자동차를 사기 위해 무이자 할부 행사기간을 이용하려면 남편의 보증이 필요하고 전업주부가 사고로 인해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일용직임금 수준밖에 산정되지 않는다. 두 차례에 걸친 상속세법 개정으로 전업주부에게도 상당부분 재산권을 인정해 주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부부별산제나 재산분할청구권, 상속세 등에서 차별조항이 많아 경제적 평등이 이루어지는 데는 걸림돌이 많다.

전업주부들이 대부분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은 많이 갖고 있다. 그러나 정작 통장에 있는 돈은 대부분 남편과 자녀를 위해 사용한다. 나의 몫을 챙기는 것이 왠지 남의 돈을 쓰는 것 같은 죄의식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전업주부의 지위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경제적 권리이다. 그러나 경제권은 아직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멀리 있다.

98년 8월 광주에 사는 한 40대 여성이 자동차 18개월 무이자 할부기간에 차를 구입하려고 모 자동차 대리점을 방문했다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부딪쳤다. 대리점 직원이 보증인을 세워야 무이자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직장을 갖고 있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직장이 있어도 여자는 보증인을 세워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는 대리점 직원은 남편을 보증인으로 하면 되지 않겠냐고 당연스럽게 이야기하더란다.

99년 2월 한 카드사에 신용카드를 신청했던 한 주부도 황당한 일을 겪어야 했다. 카드사 직원이 남편 직장으로 전화를 걸어 부인이 카드를 신청했는데 만들어줘도 되겠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이상은 한국여성민우회에 접수된 여성차별 사례 중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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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원기 기자 minwk@womennews.co.kr

전업주부들이 경제권을 얼마나 행사하느냐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월급관리를 다 주부가 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이들이 법적인 문제에 직면했을 때 과연 실제로 얼마나 권한을 발휘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는 할 말이 없다.

전업주부들이 하루아침에 가장 노릇을 해야 할 때, 금융거래나 손해배상 청구소송 또는 이혼소송을 제기할 때 우리 사회가 그들의 경제적 지위를 얼마나 낮게 평가하는가를 알 수 있다.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에는 ‘은행대부, 저당 및 기타 형태의 금융대부에 대한 권리, 무상이든 유상이든 재산의 소유·취득·운영·관리·향유 및 처분에 관한 양 배우자의 동일한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직장있어도 남편보증 요구 받아

그러나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발표한 여성차별철폐협약 이행 보고서를 보면 ‘신용거래, 대부에 차별제도나 업무처리 지침, 내부 규정이 없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경제활동 종사율이 낮고 부동산 등 자산 소유가 상대적으로 적어 남성에 비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성이 은행신용거래를 할 경우 남편의 서명은 필요하지 않지만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재산세나 소득세 과세 증명서 또는 거래실적이 있어야 하므로 전업주부가 독립적인 신용카드를 갖기란 쉽지 않다.

농촌에 거주하는 전업주부들의 상황은 도시여성과는 또 다르다. 청·장년층 남성인구의 탈농촌현상은 결국 여성의 노동량이 가중되는 현상을 초래했다. 여성차별철폐협약에서도 화폐로 표시되지 않는 경제 부분에서 농촌여성이 가족의 경제적 생존을 위해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현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편정옥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회장은 “농촌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대부분의 농촌여성들이 밤늦게까지 일하고 농한기에는 부업까지 해도 자기 밥그릇을 못찾는 형편이다. 가정에서 주체적인 역할은 해도 토지 등 모든 명의가 남편 이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혼을 하면 빈손으로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전한다. 그러면 전업주부의 재산권이 얼만큼 보장되어 있는지 우리나라 부부재산 관련법을 한번 들여다 보자.

국내 민법에서 시행하도록 한 부부별산제의 실상이 형식적이라는 문제는 이미 여성계에서 제기된 상태이다. 즉 부부 중 한쪽의 명의로 등록된 재산은 그 명의자의 특유재산으로 보고 있지만 가계 수입 대부분이 남편 명의로 취득되고 이것으로 인해 구입한 부동산도 거의 남편 명의로 되어 있는 국내 현실을 외면한 이름뿐인 법인 것이다.

재산분할권제도가 신설된 이후 92년부터 94년까지 판례를 보면 재산분할에 있어서 전업주부에게 재산의 10∼30%만 인정하고 있다.

기여분제도에 가사노동은 빠져

또한 재산분할비율 기준이 명확치 않고 이혼 전에 남편이 일방적으로 재산을 처분해도 아무런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없으며 별거시에는 재산분할권이 허용되지 않는다. 남편이 축적한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추적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결국 전업주부의 재산권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황혼이혼으로 사회적인 관심을 모았던 이시형 할머니도 이혼소송에서 승소를 하긴 했지만 남편이 소송 중에 이미 모든 재산을 모 대학에 기부해 버려 본인 몫의 재산을 언제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태이다.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명목으로 부동산을 이전하려 해도 취득세와 등록세를 물게 되어 있어 공유물 분할에 대해서는 비과세되어야 한다는 게 여성계의 주장이다.

작년 10월 26일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이‘여성의 재산권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상속재산 중에도 배우자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실질적 공유재산이 포함되어 있는데 현행 법제는 이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으며 “1990년 기여분제도를 신설하긴 했지만‘특별한 기여 행위’에 아내의 가사노동은 여전히 포함되지 않았다”고 제기함에 따라 결국 전업주부의 몫에 대한 평가는 아예 배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업주부들은 손해배상에서도 제 몫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 98년에 <재난발생시 여성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연구>를 발표한 박현미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원은 “실제 금전적인 소득이 없는 전업주부의 경우 소득액의 입증이 곤란해 손해배상액 산정시 법원에서 가사노동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객관적인 자료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불합리한 배상이 이루어진다”고 밝혔다.

외국선 시간·내용별 노동가치 계산

가령 전업주부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손해보험업계가 계산하는 상실수익액은 학력, 경력, 연령에 관계없이 노동부 임금실태보고서의 최하위 임금인 일용직근로자를 기준으로 월 90만원 정도이다. 사망했을 경우 여기서 생활비를 공제하며 장애자로 판정받았을 경우 100% 인정해 주지만 부상을 당했을 경우 80%만 인정한다.

캐나다에서는 가사노동을 하루시간대별, 주단위, 월단위, 연단위 등의 시간단위와 음식준비, 설거지, 집안청소, 옥외청소, 세탁, 다림질, 세탁물 정리, 수선, 집수리, 유지보수, 육아 등 노동내용별으로 나누어 노동가치를 계량화해 사고 관련 배상실무나 소송에 증거로 이용하기 위한 경제학자들의 연구가 활발하다. 더구나 이들 연구가 실제 손해배상 소송에서 받아들여져 배상액에 반영하고 있다.

이 외에도 집크기, 가구형태, 가족수에 따라 가사노동 가치를 평가하는 독일이나 자녀가 있는 전업주부가 매일 17가지 업무를 연중무휴 수행하는 노동력에 기준해 노동가치를 매기는 미국의 경우와 우리 상황은 큰 차이를 보인다.

박 연구원은 손해배상 산정시 주부들의 경제활동가동 연령을 현재와 같이 한달 25일 60세까지로 한정한 것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부의 일이라는 것이 정년이 없고 요즘과 같이 핵가족, 노령부부만의 독립된 가정이 늘면서 가사노동에서 주부가 해방된다는 것은 직장에 다니거나 대체노동력을 고용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한 박 연구원은 “가사노동의 종류와 시간 대체노동력이 투입되었을 경우의 경비산정과 더불어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수명과 가사노동에서 벗어나게 되는 시점을 통계로 분석해 공적인 자료를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근거로 적정한 배상기준을 손해배상제도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시했다.

미국의 경우 가사일 이외에 직업을 갖지 않은 가정주부도 그에게 인정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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