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외면한 낙태논의… 생식권 인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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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임신중절수술 건수는 1년에 150만건에 달하고 이로 인한 여성의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지만 막상 낙태논의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소외돼왔다.

한국의 기혼여성 2명 중 1명이 낙태를 경험하고 1년에 시술되는 인공임신중절수술 건수는 150만 건에 달하는 것으로 보건의료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반면 우리 형법은 낙태에 대해 매우 엄격한 규제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껏 우리 사회에선 낙태시술에 대한 논의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적도 없고 형법상 낙태죄 규정에 대해 여성의 입장에서 반론이 제기된 적도 별로 없다. 현실이 어떠한가를 떠나 단지 인공임신중절 ‘반대’라는 구호가 공허하게 외쳐지고 있을 따름이다.

대부분이 “의료사고 경험했다”

먹는 낙태약 RU486이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승인을 받아 국내 수입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인공임신중절’을 둘러싼 논쟁이 불가피하게 됐다. 지난 5일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PPFK)가 주관한 ‘인공임신중절 예방에 관한 언론인간담회’에선 보건복지부 관계자, 의사, 간호사, 변호사, 언론인 등이 모여 모처럼 낙태 논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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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참가자들은 법률개정, 태아생명권, 여성생식권, 성교육, 피임에 대한 나름의 문제제기를 했음에도 좀처럼 논의의 초점이 모아지지 않았다. 다만 수많은 여성들이 겪고 있는 인공임신중절의 폐해를 더 이상 묵인할 수 없다는 것과 피상적인 대책논의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데에는 동의가 이뤄졌다.

김창규 연이산부인과 원장이 밝힌 인공임신중절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은 ▲수술에 의한 감염, 자궁천공 등 수술합병증 ▲전신마취, 출혈로 인한 쇼크사 위험 ▲자궁내막유착, 자궁외임신, 임신중기 유산증가, 불임증 유발 ▲수술에 따른 경제적 손실 등이다. 김원장은 “쇠파이프로 자궁벽을 긁어내는 임신중절수술은 매우 위험한 수술”이라며 “상당수 산부인과 의사들이 수술 중 자궁을 뚫는 등 의료사고를 경험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게다가 불법시술이니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고 전문의로부터의 시술이 아닌 경우가 과반수를 훨씬 넘어 의료사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지만 정작 위험한 낙태에 대한 법적 보장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낙태 경험이 여성에게 주는 정신적 후유증은 신체적인 것 이상으로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방이동에 사는 K씨는 낙태수술 이후의 상황에 대해 “몸도 아팠지만 정신이 멍해지고 하루종일 눈물이 흘러 어찌할 바를 몰랐다”며 “약 세 달간 우울증을 앓았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공포스러웠다”고 말했다. 신촌에 사는 O씨는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웠을 때 내 몸이 저주받았다고 느꼈다”고 2년 전의 경험을 회상했다.

피임기회 없이 임신책임만 져

PPFK 부설 한국성문화연구소 서정애 연구원은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은 여성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해 왔다”고 지적했다. “임신을 통제하는 피임에 대한 권리를 여성에게 주지 않고 낙태를 반대하는 사회는 결국 여성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는 것이다.

인공임신중절의 예방을 논의할 땐 쉽게 피임과 성교육을 대안으로 제시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성교육을 담당할 부모와 교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학교 성교육에서조차 피임은 성문란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기피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가임 여성의 50% 이상이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는 한편 한국에서는 여전히 TV광고를 할 수 없게 돼 있으며 복용방법조차 제대로 모르는 여성들이 다수다.

한편 PPFK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에게 배포하려던 응급피임약(모닝애프터필)은 정치권의 압력에 밀려 ‘성폭행’ 당한 ‘청소년’으로 대상이 한정됐다. “사후피임약은 성문란을 부추길 것”이라는 소위 보수진영의 우려는 결국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인공임신중절을 하거나 미혼모가 되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특히 빈곤층 여성의 경우 그 실태는 더욱 비참하다. 수술 시기를 놓쳐 9개월 된 태아를 낙태하는 경우나 화장실에 아기를 낳고 버리는 경우 등의 극한 상황이 당사자의 책임으로 전가된다.

그런가 하면 임신은 여성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닌데 피임은 늘 여성의 몫이 된다. 지금까지 가장 성공률이 높고 안전한 피임방법으로 꼽히는 것은 콘돔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한국 남성들의 콘돔 기피는 유별나다. 사회적으로 아직도 임신과 출산과 육아의 몫을 떠맡고 있는 여성에게 성교육과 피임과 응급피임의 기회를 막은 채 인공임신중절의 육체적·심리적 책임을 전가시켰던 것이 지금까지 낙태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분위기다.

아이낳을 결정권 가져야 할 것

유엔인구기금(UNFPA)이 발표한 ‘2000 세계인구현황보고서’는 “연간 임신의 약 1/3이 원치 않거나 시기를 놓친 임신”이며, “매년 약 5천만명의 여성이 인공임신중절을 받고 있으며 그중 2천만 건이 불안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 인해 사망하는 여성의 수는 약 7만8천명이며 수백만 명이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북경여성대회가 선언한 여성의 생식권리란 “사회는 인공임신중절에 필요한 질적 서비스 기회를 제공해 현실적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포함한다. PPFK 심순철 출판홍보과장은 “이제 가족계획은 인구수 정책이 아닌 질적 향상을 위한 생식보건”이라며 “여성의 몸은 아들 낳는 기계로서가 아니라 아이 낳을 결정권을 가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규 산부인과 전문의는 “여성의 생식권을 인정해 ‘응급피임약’과 ‘먹는 낙태약’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응급피임약’과 ‘먹는 낙태약’은 생명경시 풍조와 성문란을 유발할 것이라는 여론에 부딪쳐 왔지만 이런 입장을 가진 이들을 위해 막상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이 몸의 권리를 상실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낙태논쟁 여성이 이끌어야

이같은 논의는 인공임신중절 예방을 ‘원치 않는 임신의 예방’과 ‘불안전한 낙태 예방’으로의 접근을 유도한다. 장순복(연세대 간호학)씨는 “원치 않는 임신은 곧 원치 않는 성교에서 온다”고 주장했다. 장씨가 전국 1만2천명의 여학생과 미혼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원치 않는’ 남자친구의 성적 요구에 대해 여학생의 21.5%와 미혼모의 63%가 “응해준다”고 답했다는 것. 장씨는 “원치 않는 성교를 하는데 어떻게 피임을 준비할 수 있겠는가”라며 “성교육은 자기 몸에 대한 주장능력의 훈련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태는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이에 대한 논의는 여성의 현실을 떠나 이야기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낙태에 대한 논의와 의사결정의 주도권을 가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최은순 변호사는 “여성의 몸의 권리가 남자들만의 논의가 되어선 안 된다”며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법률과 정책의 방향에 여성들이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피임과 임신과 출산과 육아가 여성의 몫인 상황, 여전히 심각한 여아낙태 실상, 은폐되고 묻혀지는 여성의 경험… RU486 수입논란으로 낙태논의가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금 기존의 보수담론과 각 의료진의 실리, 정계의 정략에 밀려 여성들의 목소리가 묻힌다면 여성이 자신의 몸의 주인으로 설 수 있는 날은 여전히 요원할 것이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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