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사건 계기로 본 여성연예인 인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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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의 이중적 성규범으로 인해 또다시 피해여성이 ‘사죄’해야 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다. <사진제공·일간 펜 그리고 자유>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O양 비디오 사건’ 이후 1년만에 다시 ‘B양 비디오 사건’이 터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사건은 둘만의 소유라는 약속을 어긴 것과 비디오가 유출된 경위 그리고 언론의 선정적·마녀사냥식 보도태도 등이 앞서의 ‘O양’사건과 흡사하다. 피해 여성은 눈물을 흘리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죄하는 반면 상대 남성은 ‘당당함’을 잃지 않는 태도도 영락없이 닮아 있다. ‘O양 사건’때에 비해 차이가 있다면 예상을 웃도는 확산 속도와 피해여성이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 네티즌의 반응이 비난 일변도에서 조금 비껴나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연일 스포츠지를 전면 도배하는 가운데 이를 피해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닌 여성 연예인의 인권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여론도 비등하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달 27일 성명서를 통해 이 사건은 “한 여성에 대한 폭력행위”라며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태도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한편 “ 허락 없이 비디오를 유통 및 상업화한 가해자의 법적 처벌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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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계는 “공영 방송매체를 비롯한 가해자들이 남의 사생활을 훔쳐볼 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도덕적으로 매장하려는 것과 이로 인해 한 여성과 그 가족들까지 끔찍한 정신적 고통을 겪게 하는 것은 개인에 대한 불특정 다수에 의한 테러”라고 지적한다. 또 “이번 사건에서도 초점은 피해 여성에게 맞춰지고 공개되고 있다. 여성 연예인이 이와 유사한 사건으로 인해 피해자가 된 것은 종종 있어왔던 일이다. 남성의 성행위는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여성의 성을 도구화시키고 훔쳐보고 즐기는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주류 성문화의 이중적인 성규범이 존재하는 한 제2, 제3의 피해자는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건에서 비디오의 실제 등장인물이 누구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또한 그 역시 성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 피해자이기 때문에 비난 받거나 여론에 의해 단죄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생 문아무개씨는 “피해 여성은 기혼자로서 혼외정사를 벌인 것도 아니고 죄인처럼 행동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있는 상대 남성이야말로 현행범이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둘의 처지가 바뀐 듯이 보인다. 기자회견을 열어 일파만파로 퍼져 가고 있는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면 좀더 적극적이고 당당한 자세가 필요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한편 네티즌의 반응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여성과 남성의 시각 차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여성들은 대부분 “연예인이기 앞서 피해자”라는 시각이 우세한 반면 남성들은 “출세를 위해 몸 팔은 더러운 ×” 혹은 “출신도 그렇거니와 남자관계가 복잡했다”는 등 감정적인 인신공격에 치우쳐 있다. 또 여성들이 “궁금하지만 안쓰러운 심정에 정작 비디오는 못보겠더라”는 입장인데 반해 남성들은 ‘백지영 살리기 사이트’에서조차 “비디오 구할 수 없는지” 기웃거리고 있다.

이번 사건은 엉뚱하게도 ‘주병진 성폭행 사건’에 대한 논란을 쏙 들어가게 하는 의외의 역할을 했다. 주병진 사건은 입건 당시부터 피해자의 진술과는 무관하게 ‘화간설’이나 ‘꽃뱀설’로 오도되거나 언론의 집중추궁으로 인해 피해 여성이 진술을 번복하게 하는 등 가해자 중심의 여론이 형성됐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B양 비디오 사건’ 이후 이 사건에 대한 보도는 자취를 감췄다. 주병진씨의 경우 명백한 범죄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에게만 유독 관대한 우리 나라의 편파적 성문화의 비호를 받아 상대적으로 감싸지고 있는 셈이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이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고질적인 연예인 성상납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우리모두’ 쟁점토론방에 글을 올린 윤정숙씨는 “연예계에 성상납이란 소리가 하루 이틀인가? 고상하게 굴고 연예계에서 출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나? 음반 프로듀서가 한번 거시기 하자는데 일개 무명가수가 어떻게 거절하나? 인기를 얻어야 하는데 어떻게 거절하나?”라고 지적하면서 상대 남자에 대한 질타는 없이 피해 여성만 거론하는 분위기를 비판했다.

SBS의 한 방송작가는 “연예계에 데뷔하는 여성들 가운데 상당수가 매니저가 나중에 스타가 됐을 때 대비해 ‘계약용’으로 찍는 이러한 섹스 비디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밝혔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가슴 졸이고 있는 여성 연예인이 적지 않으리란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백양이 “여성으로서의 수치심을 무릅쓰고” 기자회견을 열 만큼 진일보한 행동을 보여주었지만,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려는 의지보다 기획사의 이해타산에 따른 무마책이라는 인상을 주거나 취재통제를 한 점은 아쉽다. 여성 네티즌 정아무개씨는 “백씨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오히려 임의대로 ‘공인’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백지영씨는 이달 25일 콘서트를 끝으로 잠시 방송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의 수사도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사건이 약자인 여성 연예인이 희생당하는 마지막 사례가 되려면 이중적 성규범과 위험수위를 넘은 관음증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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