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프랑스에선

황보 신/프랑스 통신원, shinlee@lycos.co.kr 제3 몽펠리에대학 철학박사과정

프랑스에서 11월 20일은 어린이 권리의 날이다. (앞으로 이 날은 유럽 전체의 어린이 권리의 날로 선포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날부터 재판에 들어간 한 부모의 유아 폭행 살해사건을 지켜보면서 다시금 어린이 권리 보호와 관련해서 어른의 정서적 안정과 정신적 성숙이 기본적인 요구임을 재확인하게 된다(르몽드지 11월 22·25일자 보도).

지난 11월 20일 월요일 프랑스 오-드-센느(Hauts-de-Seine) 지방 중죄 재판소에 마갈리 귀이모(여, 33세, 엔지니어)와 제롬 뒤슈멩(남, 32세, 바이올리니스트)은 살해 고의성 없이 자신들의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폭행 사건으로 기소됐다. 11월 23일 법원은 ‘상습 폭행’을 이유로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폭력의 장본인을 아이 어머니로 판결, 15년형을 선고했다. 반면 아이의 아버지에겐 무죄가 인정되었다. 어머니인 마갈리 귀이모 측 폴 롱바르 변호사는 2001년 1월 1일에 파기원에 상고파기하겠다고 밝혔다.

사건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93년 여름, 결혼소개소를 통해서 알게 된 두 남녀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결혼하기로 한다. 마갈리는 청소년기 자신이 경험한 정서적 결핍을 충족시키고자 예술가와 인텔리 간의 결합이라는 이상적인 결혼을 꿈꿨다. 또, 제롬은 음악을 매개로 한 참된 일치를 꿈꾸면서 일시적이고 고통스러운 여러 관계를 전전하다 ‘가정을 이루기’로 결심을 굳힌다. 이후 둘은 결혼을 하고 아들 뤼벵을 얻는다.

그런데 1994년 12월 1일과 2일 사이 한밤중에 숨을 헐떡이며 신음하는 아이 때문에 부모는 의사를 불렀고 아침 9시에 소아과 의사는 혼수상태라고 진단한다. 아이는 입원하고, 의사들은 뇌출혈, 두 눈의 출혈, 두개골 골절 및 여러 외상들을 알아낸다. 결국 12월 5일 뤼벵은 태어난 지 56일 만에 사망한다. 해부 결과 매맞은 아이의 증후군이 확인됐다. 기소장을 통해 아이는 이미 사망 이전 무수히 학대받았다는 사실들이 친지, 이웃, 의사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

제롬 뒤슈멩와 마갈리 귀이모는 판결에 앞서 피의자로 조사 받는 중 각각 19개월과 22개월의 일시구류를 지냈고, 사건발생 후 6년이 지나 중죄재판소의 피고석에 서서 아이의 죽음을 야기한 폭행의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했다. 마갈리는 자신이 아이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고 의사들을 부른(실제로 2주 동안 여덟 번 의사를 불렀다) 사람이 자신이고, 자신의 남편은 이중인격자라고 말했다. 또 제롬은 아이의 엄마가 무척 냉정했고, 아이를 항상 안아 준 사람도 바로 자신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조사기간 동안 그는 일상에서 나타난 자신의 폭력적 성격을 인정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마갈리가 지적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하며 정서적으로 미성숙함을 지적하고 바로 그런 모습이 아이와의 부자연스러운 관계를 야기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제롬에게 있어 음악은 인격균열의 보호덮개로 작용했을 것이고 아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통해 어머니의 모습을 찾으려다 아이에게 적응하지 못했을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들의 심리분석에 따르면 제롬 뒤슈멩과 달리 마갈리 귀이모는 아동학대 부모의 주요 특징인 인격 장애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판사들은 증거도 고백도 분명한 동기도 없는 상태의 이 사건의 판결과 관련해서 자클린 아마라 검사의 논고를 따랐다. 자클린 아마라 검사는 확실한 아무런 증거 없이 ‘인상’과 ‘느낌’에 근거해서 마갈리 귀이모에게 20년형을 구형했었다. 검사는 아이의 어머니가 이상적인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자, 특히 아이의 탄생과 더불어 부부사이가 더욱 나빠지면서 남편에 대한 증오심을 아이에게 표출했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남편이 아내를 한층 사랑했더라면 이 사건이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이모 측의 롱바르 변호사는 범죄의 절대적 확신이 없을 경우 사법적 실수가 있을 수 있음을 강조했고, 제롬 뒤슈멩 측의 필립 르메르 변호사 역시 인상에 근거해 구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유아 뤼벵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부모 모두에 있다고 보아야 하겠다. 미성숙한 어른들이 어떻게 아이들의 권리의 보호자가 될 수 있겠는가? 도대체 어른들의 미성숙의 원인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마갈리의 예를 들면서, 어린시절 가정에서 신체적, 정서적으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아이는 성숙한 어른이 되기 어렵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동의 권리보호에 좋은 가정환경이 필수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기서 개인의 인격과 부부 중심의 안정된 가정이 문제의 중심이 되면서 어린이 권리 보호 문제는 출구없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오히려 미성숙한 사회 전체가 유아 학대의 공모자라고 볼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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