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노예 취급하는 사회 고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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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배우’ ‘만인의 연인’으로 전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최은희씨, 그가 요즘 영화감독으로서 다시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성영화인모임이 지난 11월10∼12일 개최한 ‘여성영화인축제’에서 그의 첫 감독작 <민며느리>가 개막작으로 상영되며 35년만에 다시 선보인 것이다.

단순한 여배우가 아니라 신상옥 감독의 동료이자 동반자로서 한국 영화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최은희씨는 일흔이 넘은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하고 있다.

- 처음으로 연출하신 <민며느리>가 인상적이었는데.

“요즘은 상상 못하겠지만 실제로 그랬어요. 점순이처럼 새벽부터 밤중까지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는 며느리들이 대부분이었죠. 자신도 며느리였을텐데 고된 시집살이를 한 사람일수록 더 모질게 시켰죠. 봉건주의에서 비롯한 여성을 학대하는 풍습이었죠. ‘민며느리’가 뭐겠습니까. 며느리 삼기 전에 실컷 부려먹기 위해 데려가는 것인데, 가난하다는 이유로 여성을 노예취급하는 것과 다름없어요. 인간다운 삶이 아니죠. 영화를 통해 그런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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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출하면서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지금 후배들이 여성감독이라 부르는데 고맙기도 하지만 참 낯설어요. 나 자신은 배우 쪽에 더 무게중심을 실어왔고 연출작도 3편밖에 안되기 때문에 감독이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 연출하게 된 계기도 내 의지가 아니라 신필름이 너무 바쁘다 보니 일손이 달려 뛰어든 것이고.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아쉽기도 해요. 앞으로 기회 있으면 감독으로 맘껏 실력을 발휘해 보고도 싶어요.

<민며느리> 찍으면서 별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 작품으로 상도 타고(대종상 여우주연상) 흥행도 성공했습니다. 배우하랴 연출하랴 정신없었죠. 그때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여러 영화에서 내 신랑역을 맡은 아역 배우가 몇 있어요. 한번은 촬영장에서 김정훈 하고 김인배(<민며느리> 꼬마신랑)가 만났는데 서로 내 색시라고 질투하며 싸우는 거에요. 어찌나 웃었는지.”

- 그간 11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주로 순종적 전통여성역을 맡아오셨는데.

“그랬지요. 어떤 때는 그게 싫어 자기주장 내세우는 동적인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양공주로 출연한 <지옥화>는 영화 찍던 초기라 별 생각 없었지만, <로맨스 그레이>의 바걸 ‘만자’는 자청해서 맡은 역이에요. 내가 못할소냐 하는 심정으로 머리도 과장되게 하고 화장도 짙게 하고 점까지 찍었죠. 그런데 팬들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였어요. 다시는 그런 역할을 맡지 말라는 항의편지를 많이 받았죠. 연기변신으로 받아들여주길 바랬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현실에서는 반대급부로 더 적극적으로 자기 주장을 한 것 같아요.”

- 실제 성격은 어떠십니까.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정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 모두를 갖고 있다고 봐요. 동창들이 만나면 그런 얘기를 해요.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 숨고 내성적이었던 네가 어떻게 배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해야겠다 생각하는 건 끝까지 하고 마는 적극적인 성격이고 모험을 좋아해요. 영화에서처럼 현모양처는 아니에요. 63년인가 파리에 갔다 에펠탑에 오를 기회가 있었어요. 남자 한 사람 포함해 세 사람이 함께 갔는데 두 사람은 1/3쯤 올라가니 무서워서 못올라가겠다고 포기했지만 나는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사방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했죠. 바람이 불어 약간씩 흔들렸는데 스릴 있는 것이 재미있고 좋았습니다.”

- 동료로서 남편으로서 신상옥 감독의 점수를 매기신다면.

“예전에는 감독으로선 100점이어도 남편으로선 0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점수를 좀 줘요. 납북 뒤 미국에 와서 사람이 많이 달라졌어요. 신감독이나 나나 일밖에 모르던 사람이라 부부였어도 가정엔 소홀했죠. 오죽하면 집에서 잠만 자고 가는 ‘하숙생’이라 했겠어요. 미국에 살 때 처음으로 가정의 단란함을 알았죠. 나도 주부 노릇 좀 해봤고, 집안 일이라곤 통 모르던 신감독도 못도 박아주고 요리하면 옆에 와서 도와주기도 하고 참 재미있었어요.”

- 배우활동하면서 가정생활은 어땠습니까.

“신감독이 집안 살림이란 살림은 모두 촬영장에 가져가는 거예요. 예전에는 궁중에서 내다 판 싼 장롱이 많았어요. 한번은 빨간 장롱을 샀는데 내 맘에 쏙 들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신감독이 촬영하는데 좀 쓰자더군요. 그것만은 안된다고 했는데 나 없는 새에 내갔더라구요. 평생 그 흔한 자개농 한번 못써봤어요. 배우인 동시에 아이들 엄마이기 때문에 가끔 찬거리 장만하러 장에도 가고 보통 여성들처럼 살았죠.”

- 북한 체류 당시 여성영화인들을 보고 느낀 소감은.

“북한영화인들은 회사원같이 출퇴근해요. 아침에 아파트에서 나와 버스 타고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죠. 여성들은 여기에 대부분 살림까지 맡아하죠. 수수하고 수더분해요.”

- 박남옥, 홍은원 등 동시대 여성감독들의 작품은 보았는지.

“안타깝게도 바빠서 못봤습니다. 내가 출연한 작품도 아직 다 못봤는데. 그나마 나는 신필름 영화만 해서 비교적 덜 바빴지 동시에 열 개 작품을 촬영하는 배우들도 있었어요.”

- 요즘 인기 배우들은 개런티를 많이 받는데 당시는 어땠습니까.

“신필름 영화는 개봉했다하면 대성공이었으니 돈은 많이 벌었죠. 하지만 다음 영화 제작에 또 투자했으니 별로 돈은 모으지 못했어요. 나도 생활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고 돈 욕심도 별고 없고 해서 개런티 같은 건 요구하지 않았고.”

- 배우로서 자신을 평가하신다면.

“내가 그동안 찍은 작품들을 볼 때마다 움츠러들고 후회를 많이 합니다. 배우 최은희에 대한 평가는 팬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어쩌다 밤에 택시를 타면 내 목소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전 작품을 내 목소리로 녹음했어요. 성우를 쓴 것은 <민며느리> 하나 뿐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전화 목소리로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요. 그럴 때 보람을 느끼죠. 한 때는 후회를 했지만 배우를 안했더라면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주겠어요.”

- 요즘 약진하고 있는 후배 여성영화인을 보면 감회가 새로울 텐데요.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죠. 작품도 좋고 흥행도 좋고. 게다가 여성제작자의 활동이 매우 활발한 데 놀랐어요. 또 내 작품을 발굴해준 것이 고맙기도 하고요. 여성영화인들의 모임이 우리 영화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영화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 영향력 있는 모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쉬운 점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배우 중 어떤 사람들은 자기 역할에 충실하기보다 예쁘게만 보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건 지양해야죠. 작품에 충실한 태도가 아쉬워요.”

-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 가을쯤에 예술의 전당에서 차범석 원작의 연극 <징기스칸>을 공연할 예정입니다. 6.25 전후 신극운동이 활발했을 때 이해랑씨가 만든 ‘신극협의회’라는 극단이 있었는데, 그간 이렇다 할 활동을 못했지요. 내가 이번에 단장을 맡게 됐어요. 징기스칸의 영웅적 면모보다 인간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춘 연극이지요. 나는 징기스칸의 어머니 역을 맡았죠. 또 영화학교 건립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졸업을 하고도 일자리 없어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사회에 나가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려고 해요. 아직 구체적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2년제 영화대학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요. 그리고 내년쯤에 자서전을 발표할 계획이고요.”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영화 <민며느리>와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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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며느리>는 최은희씨의 첫 연출작이자 세 번째 여성감독이 주연과 감독을 겸한 작품이다. 빚만 잔뜩 진 아버지가 죽자 집칸이라도 남겨보려고 민며느리로 팔려간 ‘점순이’의 인생역정을 그린 이 영화는 2000년인 지금 다시 봐도 진부하지 않고 설득력 있게 여성문제에 접근한다.

집안 형편 때문에 돈 많은 집에 팔려 간 점순에게 시어머니(황정순 분)는 “첫째가 시부모이고 둘째가 남편이고 셋째가 자기 몸”이란 가치관을 가진 봉건적 여성으로 자신도 밟았던 고된 며느리의 삶을 강요한다.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다 끝내 병을 얻은 며느리는 친정으로 내쫓기고 결국 약값으로 집마저 날린다.

아들이 자리보전하며 맥을 못추자 전전긍긍하던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다시 불러들인다. 그러나 점순 모녀는 이미 떠나버린 뒤다.

여성영화인 모임은 축제를 기획하며 여성영화인의 작품을 발굴 상영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첫 작품으로 최은희씨의 연출 데뷔작 <민며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영상자료원에 네거필름만 남아있다고 들었지만 영화인모임은 함께 보관돼 있던 프린트를 발견했다. 상태도 양호했다. 그러나 마지막 13분 정도가 손상돼 다시 녹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배우들은 고령이거나 유명을 달리한 상태라 재녹음이 불가능했고, 영화 촬영 당시와는 정반대로 최은희씨만 직접 재녹음하여 상영을 할 수 있었다.

최은희 약력

1947년 신경균의 <새로운 맹서>로 영화계에 데뷔. 64년 <민며느리>로 감독 데뷔한 후 67년 <공주님의 첫사랑>, 72년 <총각선생> 연출.

그간 110여 편의 영화 출연,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로 아시아영화제 여우주연상(65),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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