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짓을 또 어떻게 하나. 꼭 강간당하고 나온 기분이었다”, “가운도 안 주고 커튼 드리워진 진찰대 위에서 진찰했다”, “나의 그곳을 드러내고 다리를 한껏 벌리고 누워있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웬만한 정신가지고 버텨내기 힘들다”, “초음파 검사를 하는데 의사가 거기에 손을 넣고 휘휘 젓는다”, “너무 사무적인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를 겁나고 떨리게 만들었다”, “아프긴 뭐가 아파? 남자랑 자기도 했으면서…라고 말하는데 그 무례함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여성의 몸은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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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건강검진센터에서 진단을 받고있는 여성. (자료협조·목병원)

여성전용 게시판에 올라온 산부인과 경험담의 대부분은 ‘치욕적’이라는 것이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혹은 출산을 위해 병원을 찾는 여성들이 모욕감과 자괴감으로 인한 정신적 상처를 경험하고 있다면 산부인과의 진료문화를 신중히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 여성들은 병원의 시설과 비용보다 ‘의료인의 태도’에 더 민감하다. 이는 산부인과 의료인이 여성의 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대우하느냐’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여성학자들은 “여성의 몸을 ‘비정상’ 혹은 ‘결함이 있는 신체’로 간주하는 사회적 편견이 존재한다”는 데 동의한다. “여자들은 참 불쌍한 몸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강남의 모 산부인과 의사의 사고방식은 임산부를 ‘환자’로, 임신을 ‘질병’으로, 폐경기를 ‘결핍성 질병’으로 간주해 온 의학과도 관계가 있다. 이에 따라 여성들도 자신의 몸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방어적 자세를 취하게 된다. 서울 모 종합병원 간호사는 “출산 후 산모들이 ‘고깃덩어리가 된 기분’이라고 말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고 전했다.

가부장적 의료문화 역작용

산부인과학의 발달이 막상 여성들의 요구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가령 한국에서 80∼90년대 산부인과학의 가장 큰 이슈였던 생식과학과 불임치료의 발달은 내시경 진료, 시험관 아기의 탄생 등 기술적 성과를 보였지만, 여전히 여성들의 대부분은 누워서 아이를 낳고 있으며 남편·가족과 함께 분만할 수 있게 된 것도 불과 1∼2년 전부터다.

그런가 하면 여성의 60% 이상이 고통을 호소하는 월경통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강동의 A병원에선 의사가 미혼여성에게 “아기 낳고 나면 괜찮아질 거다”라는 진단을 내렸고, B병원에선 월경 시 검은 피가 비친다는 환자를 “결혼한 뒤에 오라”며 돌려보냈다. 아기를 낳거나 결혼을 하라는 것이 결코 진료나 처방이 될 수 없음에도 의료인이 곧잘 이런 식의 편협하고 몰상식한 말을 하는 건 여성의 질병이 가부장제 사회의 틀 안에서 해석되고 다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90년대 들어 미국을 중심으로 주로 여성의료인들에 의해 문제 제기되어 온 산과 의료행위의 ‘가부장적 비과학성’에 대한 비판은,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져 내려온 병원의 분만방식이 얼마나 위험하고 여성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

미즈메디(강서) 노성일 이사장은 “누워서 아이를 낳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건 산모를 고려하지 않은 의사중심의 사고방식”이라고 말한다. 현재 미국 산부인과 학회들은 이러한 자세(쇄석위)가 산모와 아기에게 압박을 주는 해로운 자세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또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제왕절개술은 “자연분만의 경우 의료사고 시 의사가 지게 될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높은 비율로 실시되고 있지만, 여성들은 이 방법이 출혈이나 감염과 같은 잠재적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는 주요 복부수술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제왕절개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광주 에덴병원의 허 정 원장은 “의사에 대한 국가적 보호책도 필요하지만, 의사가 분만에 대한 노하우가 있으면 충분히 자연분만을 유도할 수 있다”고 밝힌다.

한편 우리의 경우 대부분 분만과정에서 실시하는 외과절차인 회음절개(분만을 돕기 위해 질과 외음부 사이 조직을 절개하는 방법)에 대해, 1991년 발표된 미국 의학잡지는 “회음절개를 한 여성들은 열상으로 인해 하지 않은 여성의 50배는 더 고통스러워한다”고 보도해 회음절개가 분만시간을 앞당겨 통증을 줄여주는 방법이라고 믿었던 여성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많은 산파들과 조산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왜 여성이 출산을 하는 데 메스를 대야만 한다고 믿는가”라며 이 방법을 비판해왔다. 회음절개는 분만을 하는 동안 질조직을 더욱 깊숙히 찢어지게 할 위험이 있으며 과도한 혈액손실, 상처로 인한 통증, 불필요한 산후통을 유발할 수 있고, 유아와의 관계형성이나 수유에까지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새롭게 알려진 정보다.

여성이 의료문화 주체로

이 같은 사실은 한국 산부인과 의료문화가 여성의 건강과 출산을 위해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체감하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병원과 의료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관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건강과 의료문화의 ‘주체’는 여성이 되어야 한다. 한국 산부인과학회는 여성의사 비율을 집계조차 하지 않고 있지만, 미국에서 불붙은 산부인과학의 혁명이 ‘여성에게 의사면허권 주기’ 운동과 함께 일어났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현재 10%에 불과한 한국 여성 의사들의 양성은 중요한 과제다.

이와 더불어 병원이 해야 할 일은 가부장제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고’ 지금까지 ‘소외’시켜 왔던 여성 몸의 주인들의 경험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적어도 모 대학병원에서 아이를 낳은 산모가 “눈을 떠보니 자궁이 없어졌다”라고 말하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아야 한다. 또 매스컴의 영향으로 갑자기 부상한 분만법의 시도는 산모를 배려한 것이라기보다 의료 기기를 상업화시키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특히 ‘수중분만’에 대해선 많은 의사들이 감염위험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가 하면 여성들의 부정적인 산부인과 경험은 대부분 ‘의료인의 태도’에 의한 피해사례들이다. “설명도 없이 진료해 너무 당황했다”, “처녀냐고 묻는데 불쾌했다”, “그저 환자로서 자연스럽게 대해주길…” 등이 여성들이 토로하는 내용이다. 의료진의 80% 이상이 여성이며 1년에 1번씩 부장급까지 ‘친절교육’을 실시하는 목병원의 김미정 건강검진센터 담당간호사는 “많은 여성들이 여성의료인을 선호하고 친절한 대화가 검진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시킨다”고 말한다.

한편 십여 년 전부터 대학·종합 병원들에 들어선 여성건강검진센터와 상담실의 이용률이 증가추세에 있다는 것과, “여성들의 산부인과 지식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의료진들의 말은 긍정적인 변화를 전망하게 한다.나아가 미국 의학박사이자 심신의학자인 크리스티안 노스럽 박사는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라는 저서를 통해 “부인과 질병은 결코 외과치료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는 없고, 심적치료가 병행돼야 한다”며 여성의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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