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사회 치료하는 여성상담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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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 여성의전화가 서울에서 맨 처음 만들어지면서 지역에서도 매맞는 아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여성의전화를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89년 창립멤버들이 모였고 91년 2월에 전주여성의전화를 개설, 아나운서·기자·주부 등 각계 각층의 전문가와 자원활동가들이 동참하기 시작했죠.”

독일생활에서 여성운동 필요성 절감

함경숙(49) 전국여성의전화 대표가 여성운동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것은 결혼 후 남편 유학차 보내게 된 6년간의 독일생활에서였다.

“벌써 20년 전인 80년 당시 독일 사회는 여성들의 가사노동은 물론 이혼제도에서도 우리나라 여성들에 비해 입장이 유리하게 되어 있었고 민주적이었어요. 독일 사회의 여성지위는 당시에도 상당히 높게 평가되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가난한 유학생 가족이었던 나 자신 또한 그 사회 속에서는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반대로 우리나라 여성들은 그렇지 못했잖아요.”

때문이었을까. 함대표는 독일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정착하게 된 전주에서, 여성운동 조직으로는 처음 생긴 민주여성회에 거리낌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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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6년 9월 가정폭력특별법제정촉구를 위해 거리서명을 벌였던 함경숙 대표(오른쪽 가장 키가 큰 이)를 비롯한 전주여성의전화 식구들이다.

그리고 전면에 나서는 일은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상담같이 드러나지 않고도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분야라면 자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전주여성전화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10년간 1만4,000건 상담에 자부심

전주여성의전화 상담부장으로 시작된 그의 상담활동은 쉽지만은 않았다.

많은 여성조직들이 아직도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사무실 임대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초기 전문화된 인력 토대는 어느 조직보다 나은 편이었지만 역시 이들에게도 사무실 임대 문제는 초입에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창립 멤버는 물론 여러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일단 사무실을 마련했다.

“운동이란 게 꼭 해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소중한 마음들이 목적성이 지나치면 다치게 되고 너무 부담을 갖게 되면 의도가 좋아도 오래 가지 못하잖아요.”

그렇게 시작한 여성의전화가 올해로 10년을 맞이했고 그가 공동대표직을 맡은 지도 벌써 4년에 접어든다.

결코 전주지역 여성들의 여성의식이 낮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역 여성들이 사회적 이슈나 여성문제에 대한 의식이 높아 한목소리를 이끌어내는 데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여성들이 자신의 치부로 생각해 호응이 별로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호응도가 높았던 것이다. 상담횟수가 늘어갈수록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웅크리고 있던 것들이 햇빛 안으로 들어오면서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함경숙 대표는 상담 건수가 많은 것이 결코 좋은 일은 아니지만 10년 동안 1만4,000건에 달하는 상담을 했다는 데에 자부심을 갖는다.

그것은 여성의전화 상담은 대충 해서 될 일이 결코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 건당 적어도 1시간 이상을 상담해야 하는 게 보통이고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모아서 상대와 대화해야 하는 전화상담은 웬만한 인내와 상대를 안을 수 있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는 좋은 상담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원봉사자도 함께 갈 사람들, ‘내면 무장’ 도와야

상담교육 프로그램을 마치고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이들 역시 그가 보듬고 함께 가야할 사람들이었다.

“활동가나 운동가는 평생을 걸고 한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주부들은 너무 많은 부담을 주면 때론 도망치기도 한다. 예컨대 상담 3년쯤 되면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게 되어서인지 거만해질 때가 종종 있다. 자신이 제일 상담을 잘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 없으면 안되는 조직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자원봉사자들에게는 과잉부담보다도 적절하게 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배려해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또한 함대표는 병을 고쳐주는 의사가 자칫 환자의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자기관리의 부실로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에 항상 건강이나 컨디션 등 스스로 내면까지 무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도 가끔은 딸의 문제를 잘 해결해줘서 고맙다며 친정어머니가 직접 들고오는 참기름은 거부할 수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여성의전화를 쉼없이 굴러가게 하는 작은 정성인 셈이다.

상담을 넘어 인권향상에 몰두

전주여성의전화가 김부남 사건 연계활동을 시작으로 김교사 성폭행 사건 등 지역에서 일어난 큼직큼직한 성폭행 사건에서 거의 해결사 역할을 해왔던 만큼 이미 7년 전부터 여성상담을 모체로 한 이들의 활동은 점차 여성인권 쪽으로 그 초점을 바꿔가기 시작한다.

지난해 함대표가 여성단체연합의 성과인권복지위원장을 맡게 된 것 또한 그렇고 여성의전화

가 여성의전화 쉼터를 마련하게 된 것 역시 그러한 목적에 부합한다.

하지만 작은 사건이라도 한 사람의 인권을 위해 끝까지 밀어부칠 수 있는 힘, 그것은 대충 “상담하고 신고하세요”라는 말로는 대변될 수 없는 실무자들의 많은 발걸음과 실천적인 노력을 필요로 했다.

그 와중에 항의전화를 받고 전화협박을 당하는 것은 부지기수였다. 한번은 모 여중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이 여중생을 집단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기 위해 학교에 갔더니, 소위 권력층의 힘을 빌어 “뭐하는 여자들이 교육장소에까지 와서 교장을 위협하느냐”며 도리어 적반하장이더라는 것. 그래서 당시 상담부장이었던 함대표는 당당하게 근거를 가지고 얘기하며 전화 협박한 상대에게 “근거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가만히 안놔두겠다”고 강단있게 말했다는 것이다. 함대표는 지금도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용기있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고 너털웃음을 짓기도 한다.

신앙도 해결키 어려운 문제 계속 접근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선생님을 산골까지 쫓아가 사표를 쓰게 만들고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험악한 얼굴로 찾아와 상담을 요구했던 남편들이 어느새 느긋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갈 때, 혹은 바쁜 노동의 와중에도 상담을 위해 기름묻은 일터의 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에 준비하고 찾아온 남성 내담자들을 볼 때 정말 보람이 아닐 수 없었다는 함경숙 대표.

그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매맞는 아내들 구타상황을 전화 설문하는 대대적인 프로젝트와 고3 수험생들의 시험이 끝나면 진행될 청소년 대상 양성평등교육이 마무리되면 4년간 맡아왔던 대표직에서 곧 물러날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함대표는 10년간의 공덕을 그대로 묵혀두지는 않을 생각이다. 교회에서 신앙적으로 푼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풀 수 있는 한계가 너무 극명한 어려운 문제들을 상담하고자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김강 성숙 기자 annykang@womennews.co.kr

함경숙 대표 약력

1952년생, 전주여성의전화 창립준비위원, 가정폭력전문상담원 과정 수료, 현재 전주여성의전화 공동대표, 전북여성단체연합 성과인권위원회 위원장을 공동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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