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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년 노동법 개정 파업투쟁에 참여한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 소속 학생들과 동성애자를 상징하는 레인보우 깃발. <끼리끼리 제공>

지금 한국에선 연예인 홍석천씨의 커밍아웃을 둘러싸고 온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홍선척씨의 커밍아웃은 무엇보다 그 동안 검증되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의 정도를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한국 동성애자 인권운동과 동성애자 인권의식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과정

최초의 동성애자 커뮤니티는 이태원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게이(남성동성애자)들을 중심으로 한 유흥문화가 70년대 말부터 종로지역과 신당동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공식화된 모임은 80년대 후반 외국인 레즈비언(여성동성애자) 모임 사포를 중심으로 조직된 ‘초동회’다. 93년 12월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표방하며 남녀동성애자 모임으로 발족한 초동회는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동성애자 내의 남녀의 이해관계 차이를 인식하며 94년 2월 남성 동성애자 모임 ‘친구사이’와 94년 11월 여성 동성애자 모임 ‘끼리끼리’로 분리된다. 이들 모임은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초석이 되었고 99년 5월엔 뉴욕 ‘국제 게이·레즈비언 인권위원회’(IGLHRC)가 선정한 필리파 드 수자상(Felipa de Souza Award)을 수상하기도 했다.

95년 들어와 서동진, 이해솔 씨 등 레즈비언·게이 인권운동가들이 대사회적으로 커밍아웃했으며, 대학가에선 진보적 성담론으로서 동성애 담론에 대한 붐이 일어났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회에 머리를 내민 동성애자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 높아 TV 3사가 모두 시사 프로그램에서 앞다투어 동성애에 대한 내용을 방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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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호주에서 열린 동성애자의 날 행사(mardi gra parade)에 참가한 사람들. <사진·이안 ian9303@hanmail.net>

이어 연세대 ‘컴투게더’, 서울대 ‘마음001’ 등 대학가 동성애자 모임이 차례로 결성됐고, 95년부터 피시통신의 활성화로 천리안 동성애자 인권모임, 나우누리 동성애자 모임 등이 수많은 회원을 기반으로 확장되었으며 153등의 전화사서함을 통한 동성애자 모임의 다양한 분화가 시작됐다.

97년 11월 끼리끼리, 친구사이, 마음001, 컴투게더 등 단위가 연합해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대동인)으로 출범했다가 98년 8월 명칭을 바꾼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련)의 활동은 한국 동성애 인권운동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97년 민주노총 주최 노동절 집회에 레인보우(동성애자를 상징) 깃발을 앞세우고 참가한 동인련은 “사회 모든 소수자의 인권운동과 연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가장 급진적인 동성애자 단체로 부각되었다. 특히 99년 7월 윤리, 교련 등 동성애 비하 국정 교과서의 수정요구안을 교육부가 받아들이는 성과를 얻어냈으며, 현재 인권위원회를 독립적 국가기구로 설립할 것을 촉구하는 민간단체공동대책위원회의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한편 동성애자 모임은 동성애를 억압해 온 기독교와 국가의 에이즈정책에 대항해 커뮤니티 안에서 게이교회를 세우고, 에이즈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활동도 벌이고 있다.

동성애자 공동체의 성장과 더불어 동성애 문화운동도 활성화됐다. ‘다이크(Dyke)’, ‘또다른세상’ 등 동성애자 모임에서 발간한 소식지에 이어 98년 2월 국내 최초 동성애 잡지 ‘버디’가 창간돼 동성애자들간 정보를 제공하고 서로 소식을 주고받는 언론의 역할을 꾀해왔다. 버디는 시내 유명서점 등을 통한 공식 채널을 통해 꾸준히 출간돼오고 있는데, 편집장 한채윤씨는 “이성애자들의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커밍아웃을 하고 단체를 구성했던 소수 몇 명의 레즈비언·게이에서 시작한 커뮤니티는 90년대 말 들어 급속한 속도로 확대됐다. 레스보스, 해커 등 레즈비언·게이바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는 1∼2년 사이 백여 개의 인터넷 까페가 생성되는 등 다양한 성격으로 확장되었다. 최근엔 청소년 동성애자 모임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또 97년 무산됐었던 제1회 퀴어영화제가 98년 성황리에 개최되고, 올해 제2회 퀴어영화제와 함께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것은 동성애 문화운동의 성과라 할 수 있다.

폭력적 언어로 동성애 위협

그러나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동성애공포증에 대해선 알려진 바 별로 없다. 외국의 경우 동성애자에 대한 테러와 동성애자 차별입법안 등이 인권운동의 시발이 되었던 것과는 달리, 한국의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몇몇 운동가들이 매스컴을 통해 스스로 계기를 만들며 시작되었고 정치적 이슈를 통해 운동의 성장기를 형성하지 못했다.

한때 대학가를 강타한 성정치학은 동성애를 진보적 성담론 안에 부각시켜 언론을 비롯한 사회권력이 동성애를 “대놓고 비아냥거리지” 못하게 하는 데에는 일익을 했는지 모르지만, 막상 동성애자 사이의 실질적 논의는 이루어지지 못한 채 동성애 담론을 난해한 이론 정도로 묶이게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법에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조항이 없고, 동성애자에 대한 테러사건이 불거졌던 일도 없으며, 대학가의 진보적 담론으로 동성애가 등장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동성애자에 대해 관용적이라는 의미일까.

그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홍석천씨의 커밍아웃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파장이다.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들은 한국의 법에 동성애자 차별조항이 없는 이유는 “견고한 가부장제와 이성애주의 하에서 동성애자의 존재 자체를 아예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성애와 관련한 모방송사 토론 프로그램을 지켜본 전 끼리끼리 회장 이해솔씨는 “동성애자 모임들의 꾸준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2000년 현재 한국사회에서 동성애를 이해하는 수준은 밑바닥이라는걸 알았다”고 말했다. 여전히 ‘동성애자가 존재하는가’가 초점이라는 것이다.

동성애공포증을 그대로 읽어볼 수 있는 곳은 인터넷이다. 동성애자를 폄하하는 이들의 사고를 동성애공포증이라 칭하는 것은 이들이 논리적인 주장을 펴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용어를 사용해 동성애자들을 위협한다는 점에서다. 홍석천 커밍아웃 지지서명운동 사이트를 비롯한 레즈비언·게이 사이트에는 “XX새끼”, “길에서 기다리다가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테러성 글들이 수두룩하다. 동인련 사이트는 해커들의 공격을 여러 차례 받기도 했다.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은 조만간 종묘에서 가두캠페인을 열 계획이지만, 최근 ‘아방궁 프로젝트’가 유림의 폭력으로 무산된 것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폭력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친목위주서 벗어나 권리선언할 때

“지금은 모두 나서주어야 할 때다.”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의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이들은 수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인권운동에 대한 의식이 약화된 레즈비언·게이 단체들에 대해 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친구사이와 끼리끼리는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로 출범했지만 지금은 커뮤니티 활성화에 중심을 둔 활동을 펴고 있다. 95년 발족해 전국단위 동성애자 모임으로 조명을 받았던 한국동성애자인권운동협의회는 이렇다할 활동 없이 유명뮤실한 상태다.

임태훈 동인련 대표는 “지금까지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이렇다 할 방법론이 부재했다. 지금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한국 동성애자 인권의 미래를 결정짓는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한국 동성애자 인권운동과 동성애 담론·문화는 짧은 기간동안 많은 것들을 수행해왔지만 이를 지탱해주는 우리 사회의 기반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외국 동성애자 인권단체들의 활동이 ▲동성애자와 단체에 대한 재정 지원 ▲동성애 폄하 미디어에 대한 항의 ▲교육분야 침투 ▲선거 개입 ▲에이즈에 대한 올바른 시각정립과 대책마련 활동 ▲동성애자에 대한 폭력 대응 등으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반면, 한국 동성애자 단체들의 활동은 주로 친목 위주로 전개되고 있어 한계점이 노출된다.

한편 지식인 위주의 성담론과 소수 개혁적인 인권운동가들에 의한 계몽은 그 지지기반을 잃었을 때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레즈비언·게이 공동체의 성장과 더불어 보다 다양한 담론의 형성, 문화활동 전개 등의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새삼 다시 강조되는 것은 ‘소통’이다.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한 성정치학 논의와 달리 레즈비언·게이 공동체들의 소통과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초동회의 해체과정에서 이미 보여준 레즈비언·게이 간의 권력구조, 동성애 공동체 안에서 또 다른 소수자인 트랜스젠더, 이성복장선호자 등의 인권, 가부장제 해체의 전략과 방법 등 논의되고 모색되고 극복되어야 할 문제들이 ‘동성애자 인권’이라는 이름아래 실체를 보이지 않은 채 꾹꾹 눌려 있다.

동성애자는 어느 사회에서나 예로부터 존재해 왔다. 10년 전부터 한국사회에선 공개적으로 얼굴을 내민 동성애자들이 있었고, 공식적인 단체를 만들어 활동해왔다. 통신과 인터넷 상의 레즈비언·게이 공동체들은 동성애자의 수가 그리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동성애자를 ‘가만히 숨어 있어주어야 좋은’ 존재로 간주한다. 홍석천씨의 커밍아웃이 이런 사회 속에서 ‘더 이상 숨어 살아가지 않겠다는’ 동성애자들의 당당한 권리선언으로 이어가려는 사명을 다하기위해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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