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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이 있었던 1주일간 우리집도 뭔가 의식을 치른 것 같다.

어발이가 수능을 치려면 2년이나 남았음에도 “2년이나”라고 말하

지 않고 “2년밖에”라고 말하면서.

‘수능시험의 전국민화’라고 어느 신문이 제목을 뽑았듯이 우리의

수능시험은 전국민이 경건하게 참여해야 하는 내키지 않는 의식이

다. 수능시험 전날 TV는 연신 불공드리는 학부모들로 가득찬 사찰,

철야기도 하는 교회의 모습들을 비춰주고 있었고 이를 보면서 큰애

가 “우리집도 2년밖에 안남았어…”라고 토를 붙였다. 어떤 집은

“이제 1년밖에…”, 또는 어떤 집은 3년밖에, 4년밖에 안남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많은 집들이 언젠가 벌어질 수능시험과의 싸움장

을 연상하면서.

‘수능시험의 전국민화’?

어발이는 생각보다는 담담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아무런 호기

심도 보이지 않은 채. 이미 모의 수능시험으로 ‘그런 시험’의 연

습이 일상화되어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수능이 끝난 다음 다음 날인

가 9시 뉴스 끝쯤에 무슨 뉴스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놓쳤더니 어발

이가 “시험만 끝나면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중얼거렸다. 듣

고보니 수능 점수가 낮다고 자살한 아이에 대한 뉴스였다. 이런 모

든 것이 우리사회가 입시철이면 거쳐가는 의식이 되어간다.

‘수능’이라는 의식이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동안 엉뚱하게 어발이

는 명동으로 진출하여 쇼핑을 하고 왔다. 한쪽에서는 수능시험 때문

에 모두 초긴장을 하고 있을 때. 어발이는 이번 겨울방학이야말로

실컷 스키를 타야된다고 작정하고 있는 듯 하다. 이번에 타고 나면

2년 후 수능이 끝나야 스키장을 갈 수 있을 것으로 지레 생각하는

듯하다. 마치 “지금 못놀면 앞으로 2년은 못 놀아”에 빠져 있었던

듯하다. “우선 먼저 놀아둬야 해…”에 거의 사로잡혀 있다. 수능시

험 있기 1주일 전부터 운동화를 사고 또 스키복도 사야한다고 조르

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산 스키복을 고1 때까지 입은 사람

은 자기밖에 없으며 거기다 운동화는 뒷창이 나갔고 삐삐는 문자가

되는 삐삐로 바꿔야 하고. 스키복을 사는데는 동의했지만 왜 꼭 수

능시험이 벌어지고 있을 때 사야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시큰둥하게

응수했다. 신문 광고를 보니 명동의 어느 스키 전문점이 대규모 세

일을 하니 이때 안사면 언제 사겠느냐, 그렇다고 엄마가 사다줄 것

도 아니지 않느냐고. 그 쪽에 안목이 있다는 친구와 약속까지 해놓

고 꼭 쇼핑을 나가야 한다고 우겼다. 그러나 의기양양해서 나갔던

어발이는 6만 몇천원짜리 운동화 한 켤레와 5만원짜리 삐삐 하나만

사고 그냥 돌아왔다.

“저 운동화 괜찮은데”하고 보았더니 13만 얼마여서 “아 역시 내

가 보는 눈은 있어” 그러면서 제자리로 갖다놓았고, 그 다음에 쓸

만하다 싶어 주워든 것이 모두 10만원대여서 ‘웬 물가가?’ 이런

기분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고, 결국은 6만 몇천원짜리 운동화

로 낙찰하고 세일 가게로 가기 전에 백화점 정품의 가격과 품질로

안목을 정비하자는 친구의 제안에 따라 스키복 코너를 둘러본 모양

이었다. 그런데 괜찮다 하고 가격표를 보면 0을 하나 빼고 보았거나

앞에 숫자를 잘못 읽은 것이었다나. 더 기죽기 전에 세일 전문점으

로 갔는데 그 곳에서는 고를 옷이 없어 김샌 얼굴로 돌아왔다. 말하

자면 수능시험 전날 어발이는 욕망을 길들이는 연습을 스스로 하고

온 셈이다.

‘2년밖에’란 위기감

수능이 끝나고 보니 어발이가 수능시험 기간에 기를 쓰고 쇼핑을

하겠다고 우긴 것이 이해가 갔다. 이번 겨울방학이야말로 놀고 말겠

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것도 어쩌면 이해해야할지도 모르겠

다는 생각을 했다. 수능시험의 문제와 답안지가 신문을 온통 장식해

들어오고 그리고 “이제 2년”이라는 숫자는 매우 현실감있게 어발

이에게 다가오는 듯 했다. 온통 화제는 뉘집 아이는 수능○○○점,

누구 누나는 ○○○점, 누구 형은 ○○○점, 아이들은 모두 숫자로

점수화되고 있었다. 아이들의 얼굴이 숫자로 보일 지경이다. 어발이

는 특히 세명의 수능점수에 가장 관심을 보였다. 한명은 자기가 좋

아하는 사촌누나, 한명은 과학고에서 이름을 날리는 친구의 형, 그리

고 또 한명은 고등학교를 1년도 채 안마치고 자퇴한 뒤 1년만에 수

능을 치른 ○○형의 점수였다. 사촌누나는 시험본 날은 평소보다

20-30점 올랐다고 안도를 하더니 다음날은 전국평균이 40-50점 올

랐다는 뉴스에 울상이 되었고 자기 학교 시험 때도 300점을 한번도

못넘던 아이가 380을 맞아 자기 학교 수석을 넘보게 되었다고 투덜

거리고 있다.

“역시 시험은 운인가봐”하면서. 어발이가 시험 1주일 전에 잘보라

고 거울도 선물하고 붙으라고 엿든 캔디 한상자도 가져다 주었는데

도. 선망의 대상이던 과학고 다닌 친구 형은 수능 점수가 평소만큼

밖에 안나와 초상집이라는 뉴스를 물어왔고. 뭣 때문에 입시공부를

3년씩 하냐고 과감하게 2년으로 줄인 ○○형네 집에 전화를 걸게해

서 성적을 물어보게 하더니 ‘역시나’를 연발하며 경이의 눈빛이

되었다. 자기는 너무나 재미있는 고등학교 생활을 단축할 생각이 없

다더니 실력(?)이 궁금했던지 <97년 11월 19일 시행 수능고사 문제

와 해설집>이라는 책까지 사가지고 들어왔다.

문제를 한참 풀더니 자기는 역시 언어가 딸려(언제는 수학이 문제

야 그러더니!)어쩌구 했는데 1시간 뒤에 보니 책상에 얼굴을 묻고

자고 있었다. 다음날은 논술로 판가름날 것이라는 보도에 덩달아 걱

정이 되는지 “요즘 책을 안읽었더니 통 머리가 안돌아가” 그랬다

가 “난 글재주가 없어” 그랬다가 왔다갔다였다.

수능 강박관념속에 1학년 마감

어발이의 1학년은 이렇게 마감되는 모양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

서 어떻게 ‘엄마티’를 내볼까 생각해보았다. 변별력 없는 수능시

험, 일관성 없는 입시정책, 파행적인 학교교육 이런 것들을 묻어두고

꼼꼼하고 착실하게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임을 과소평가하고 있

다고 어발이에게 잔소리를 해야할런지…

추신:어발이에게 그동안 고1엄마의 교육일지를 연재했음을 알려야

겠다. 그동안 자기의 고1 생활을 기록해 준 것을 고마워할지 당황해

할지 모르겠다. 앞으로 2회를 더 쓰고 끝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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