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한계 뛰어넘어야 여성운동도 발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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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신도시 아파트 주변에 들어선 S화학공장 이전운동을 부녀회 여성들

이 성공적으로 이끌어냈을 때만 해도 안양지역에 여성운동은 거의 전무했

다. 이를 계기로 지방자치가 실시되는 것에 발맞춰 지역여성운동의 필요성

을 절감한 여성들이 모여 95년 창립한 단체가 안양여성회다. 의회 감시활동

에 있어 큰 역할을 해 온 안양여성회는 97년 발족한 안양여성의전화와 안양

내일여성센터의 전신 역할을 했다.

97년부터 안양여성회와 인연을 맺은 정경자씨는 현재 안양여성회와 경기

여성연합의 공동대표로 연대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운동가 기질은 천성

8남매 중 셋째였던 정경자씨는 주위에서 “남자로 태어났으면…”이란 말

을 많이 들었다. 유달리 정의감이 강해 결혼 후에도 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조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 평범한 시민으

로서 누군가 일을 할 때 도움을 주고 참여하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었다고.

그러나 유치원 다니는 아이를 위해 어머니 인형극을 준비하고 초등학생들

을 위해 어머니 사물놀이단을 조직했던 정경자씨는 이미 운동가로서의 끼가

다분했다. 부녀회장으로 주민들을 설득해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폭력노점상

을 쫓아내고, 학교운영위원으로서 교장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린학

습 프로그램을 성취해 냈다.

예능에도 뛰어난 소질이 있었던 전씨는 여성백일장에서 당선된 사람들과

함께 동인활동을 했다. 나이 들어 배우기 시작한 그림도 많은 수상경력을

남겼고, 화가에게서 계속 공부할 것을 제안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다했으면 한다”는 남편의 말로

그의 예술활동은 마침표를 찍게 된다. “내게도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

이 있었던 것 같다.” 아이 둘을 다 키우고 나서야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결국 스스로를 설득하고 포기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막상

컸을 때는 그림을 계속할 힘이 없었다. 그것은 이미 예전에 스승이었던 화

가가 경고했던 일이었다.

여성운동은 포기할 수 없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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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식 안양여성회 공동대표의 시의원 출마를 도운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 안양여성회 활동은 정경자씨에게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었다. 전씨

는 “예전부터 하고자 했던 일을 이제야 하게 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안양여성회가 주력한 것은 여성들의 간접 정치참여다. 의회 방청단을 조

직하고 자체 연구·조사팀을 꾸려 활동해 온 것은 통장송달료 인상동결, 이

마트 주변 교통문제 해결 등의 성과를 낳았다. 처음에는 “집안 일은 어떡

하고 여기까지 왔느냐”며 무시했던 시의원들의 태도도 점차 바뀌었다. 특

히 제2종 주거지역을 둘러싼 시의원 뇌물사건에 대응한 시위는 해당 의원들

의 사퇴와 시의회내 의원 윤리규정을 신설하는 성과를 남겼다.

“연기가 나는 것을 미리 감지했다면, 소리를 질러 빨리 다른 사람들을

깨워야 한다”는 것이 그가 여성운동을 하는 이유다. 여성회 활동을 하면서

남편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느니 같이 죽자!”는 남편에게 그는 출장을 앞두고 장문의 편

지를 썼다.

“이제야 내가 해야 할 일과 삶의 의미를 찾았는데, 더 이상 나의 길을

포기할 수 없다”고. “당신이 꼭 지지해 주어야만 한다”고. 출장에서 돌아

온 그를 남편은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었다. 운동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삶은 이론보다 어렵다

현재 정경자씨는 활동가교육에 열심이다. 여성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대

부분은 운동경험이 없고 이론적 지식 없이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처음

엔 “가엾은 여성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신념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

나 시간이 지날수록 부딪치는 것은 바로 자기자신이다. 정경자씨는 여성문

제는 결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겪는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될

때 이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늘 삶은 이론보다 어려운 법.

그는 후배들에게 “계속해서 갈등과 위기를 뛰어넘어야 하고, 그때마다 여

성운동이 함께 발전한다”고 조언한다.

교육패러다임 바꿔야 여성해방

여성회가 주력하고 있는 활동에서 교육분야를 빼놓을 수 없다. 교육의 평

준화를 이뤄내기 위한 연대활동과 학부모 네트워크 구성에 노력해왔다. 그

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라고 정경자씨는 말한

다. 우리 나라처럼 교육의 의무를 어머니가 전담하고, 아이의 성적이 어머니

의 성적이 되는 현실에서 교육은 바로 여성문제다. 과연 어떤 것이 교육인

가. 경쟁적 교육시스템에서 해방될 때 자식과 어머니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학부모 대상 교육을 통해 강조한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평화통일교육과 정치참여교육도 미래를 위한 중요

한 과정이다. 앞으로는 미디어 모니터링 활동을 통해 시청자로서의 여성의

힘을 키워가려 한다.

시민운동 내 여성차별 근절해야

남편을 살해한 1급장애인 유순자씨 사건과 성남경찰서 알몸수색사건 대응

등은 ‘연대’를 통해 거둔 성과다. 알몸수색의 관습이 심각한 여성인권침

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경기도지역 여성단체들은 모두 발벗고 나섰다.

총선시민연대 활동과 소파개정운동 등은 여성단체뿐 아니라 다른 시민단

체와의 연대가 반드시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일련의 활동을 통해

깨달은 것은 시민운동 내 여성운동과 여성의 지위는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사실이었다. 총선시민연대 내 남성활동가들은 여성을 부수적 역할에만 배치

시키고, 여성간사가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렸다. 이들에게 정경자씨는 “기존

정치권만 아니라 시민운동 안에도 여성차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요

구했고, 마침내 시민단체내 성차별 개선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

의를 얻어냈다. 이에 따라 10월중에 ‘시민활동가 성인지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정경자씨는 “지역사회에서 여성차별관행을 모두 없애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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