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식이 결식으로만 간주되서는 안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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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일터에 나간 후 질러진 집에 홀로 남은

한 빈곤가정의 아이. 방임과 방치 역시 아동학대의

주요한 부분임을 이해하는 데서 빈곤가정의 아동문제를

보아야 할 때다.

16만여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결식아동들(교육부 집계). 이들은 97년

IMF 위기로 촉발된 가정해체 이후 빈곤층에 대한 가장 대중적이고 절실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후 정부와 민간 차원, 말 그대로 범국민적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지원책이 강구됐지만, 아직까지도 ‘결식아동’에 대한

엄밀하고도 통일된 이해와 지원은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 여름방학을

마치고 새학기로 돌입하면서, 또한 겨울방학을 미리 대비하면서 결식아동에

대한 근본 치유를 위해 그들에 대한 이해와 대안을 생각해보는 지면을

2회에 걸쳐 마련한다. '편집자 주'

가난하다고 ‘방임’하는 것이 가장 큰 병

전남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생 훈이는 아버지의 구타에 못이긴 어머니가

훈의 출생 1년만에 가출해버린 전형적인 결손가정의 아이. 아버지는

폐결핵으로 실직상태인데 심한 알콜중독증으로 술만 마시면 훈에게 무차별

구타를 한다. 2평 정도의 방 둘에서 생활보호대상자로 월 20만원의 지원을

받으며 살고 있으나, 정상적인 생활은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지원

생활비의 절반은 술값과 빚으로 나가고 있다. 그러나 훈은 “그래도 나는

아빠를 사랑합니다. 나는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고아원에 안가도 됩니다.

나하고 아빠하고 사는 게 너무나 행복합니다”라고 기도하곤 한다.

IMF가 터지자 용돈 줄이기, 음식물 남기지 않기, 학용품 아껴쓰기 등

‘우리집 자린고비’ 수칙을 세우며 열심히 살려하던 석이네. 가훈처럼

붙여놨던 ‘제일은 사랑이라’란 액자글도 무상하게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99년 봄 엄마는 끝내 가출해버렸다. 이후 아버지와 두 형제만 남은

석이네는 살 길을 찾아 대전을 떠나 성남으로 이주했지만 여전히 막막한

상태다.

IMF 최대 피해자들 중 하나는 바로 실직으로 인해 가정해체가 급속화된

빈곤가정의 아이들일 것이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도 단지 이 아이들에

대해 ‘세 끼를 제대로 먹지 못해 늘 배를 곯는 아이들’로만 단순화시켜

보는 사회 인식에 관계자들은 분노한다. 결식은 단지 몇 끼를 먹느냐는

문제를 넘어 빈곤가정 상황의 대표적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여기엔

결손·위기가정에 따른 복합적 문제뿐만 아니라 성장기 아동의 정서적

결핍과 공동체 적응력 결핍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지적이다.

결식아동의 문제를 결식으로만 한정시켜 보는 한 역설적으로 영원히 이

문제는 풀릴 수 없다는 관계자들의 단언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나온다.

결식아동들을 돌보는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쌀 한 톨 없어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은 실제적으로 거의 없으며, 얼마나 영양이 고루

갖춰지고 정성과 사랑이 들어간 ‘따뜻한 밥’을 먹느냐는 문제라고.

정부가 쌀을 지원해도 밥만, 또는 김치와 달랑 함께만 먹을 수는 없고,

게다가 이 쌀로 누가 밥을 지어주고 밥상을 차려주느냐는 문제라는 것이다.

방임은 또다른 아동학대

그래서 빈곤가정 아이들을 위해 16개의 공부방, 33개의 신나는집, 1개의

쉼터를 운영중인 부스러기선교회에선 몇 번의 시행착오을 거쳐 98년 말부터

신나는집, 쉼터에 사회복지사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현재 여력상 서울 경기

대전 지역에 그쳐있지만, “결식의 의미를 너무 밥쪽으로만 치우쳐

접근했다. 아이들에게 밥만 먹이는 게 다는 아닌 것이다”는 회의의 결과다.

99년 5월 부스러기선교회에서 서울 봉천동에 개소한

빈곤·결손·위기가정 아동들을 위한 중·단기 그룹홈을 운영하는 최은정

사회복지사는 결식을 ‘방임과 방치’의 문제로 본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가출 등에 따라 가족구성원의 변화가 많아져 가족형태가 계속 변화하면서

편부모 가정, 할머니 가정 등 결손가정이 급격히 증가한 데 따른 것이라는

것이다. 생활고에 쫓기는 부모들은 새벽에 일터로 나가 밤 늦게 귀가하는

일이 빈번해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다. 빈곤의 결핍감으로 인한 가정불화,

폭력과 폭언, 알콜중독 등의 파행은 일상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동구타뿐만 아니라 부모들의 무관심으로 인한 방임도 일종의 학대라는

것이 최씨의 의견이다.

“방임은 어떤 면에선 학대보다 더 무섭죠. 아동이 구타를 당할 경우

도망가거나, 싹싹 빌거나, 대항하는 등의 위기상황 대처법이 나름대로 생길

수도 있습니다. 반면 무관심 속에 방치돼버리면 무반응으로 일관하게

됩니다. 심한 경우, 야단을 쳐도 그냥 자버려 쉼터에서 무반응을 벗어나

꾸지람 등으로 울게 만드는 데 6개월이나 걸렸습니다.

이처럼 방임은 아동이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생존전략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며, 따라서 극단적으론 아동에게 삶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일 것입니다.”

공동체 부적응증으로 발전

그 대표적 사례로 그는 쉼터에서 보호하는 7세 아동을 든다. 5세 때까지

빈곤가정에서 그냥 방치돼버린 그 아동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드러누워

TV를 시청하는 것. 하도 정도가 심해 뒤통수가 다소 기울어졌을 정도다.

그러나 이 아이는 아직까지도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방에서 뒹구는

것이다. 그래서 쉼터에선 앉아서라도 똑바로 TV를 볼 수 있도록

교육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남과 어울리는 즐거움, 능동적으로

노는 즐거움을 가르치는 일단계로.

빈곤가정의 방임은 결식을 넘어 사회 공동체에 적응하는 법을 습득하지

못하게 한다. 가령, 아침과 저녁에 세수하고 식사는 수저와 젓가락으로 하며

식사후 이빨을 닦고 겨울엔 내복을 입는 등의 극히 개인적 차원에서부터

공공장소에선 조용히 하고 웃어른에겐 어떻게 예의를 지켜야 하는 지에

이르기까지 생활지침 하나하나가 부재한 형편이다. 이들 아동들의 부모들은

애가 워낙 유별나 동네 돌아다니며 사고만 친다, 그래서 때릴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기본적인 생활수칙을 못지키는 것을 교정하려는 노력은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

부모들은 너무 힘들어 아이들에 대해 자포자기해버리거나 혹은 아예

아이의 상황을 모르거나, 단순히 왜 내 속을 썩이나 식으로 미움으로

아이를 대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들 부모들 역시 어렸을 때 빈곤으로

자신의 아이들 같은 경험을 이미 해버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가르치는 생활수칙을 세세히 부모에게 반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한다.

아이에게 미치는 빈곤의 여파는 몇가지 특징적인 ‘병’으로 표출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도벽. 이는 복합적 불안이 그 주요원인으로 ‘충족’

밖에 해결방법이 없다. 가령, 용돈을 받은 적은 없으나 오락실에 가고 싶을

때 불건전한 환경에서 아주 나쁜 방식으로 그 욕구를 충족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아동은 이미 방치됐기에 이를 제재할

수단이 없다.

‘문제가정도 함께 살려야 한다’

다음으론, 학교기피증. 등교 길에 흥미로운 것을 보면 그냥 학교를

지나칠 정도로 충동적 결석이 많다. 또한 수업시간 중에도 말없이 교실을

나가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선생님들은 처음엔 이에 당황하나 그

아이에게만 매달려 있으면 끝이 없고, 따라서 다른 아이들의 수업에 지장을

받게 되므로 대부분 사고만 안치면 다행이지, 하는 식으로 그냥 방치해

버린다. 이는 결국 학교부적응증으로 곧장 이어지게 된다.

요즘처럼 초등학교 입학 이전에 한글을 깨우치는 상황에선 한글

습득과정이 자연히 빨라지고,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빈곤가정 아동들은

반문맹 상태가 되면서 이해력, 사고력, 판단력 등이 떨어지게 된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며 학습부진이 누적되고 아이들은 학교 밖을 돌며 고학년에

올라갈수록 가출과 자퇴를 반복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방임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버리면 결국 문제들은 누적되어 그 아동을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린다. 이는 그 아동의 잠재적 가능성을 닫아버리면서 불안정한

생활을 고착시키고, 이것이 평생 지속되게 만들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빈곤의 유전인 것이다.

따라서 빈곤아동의 치료를 위해선 임상심리치료와 더불어 통합적 개념의

사회복지 시스템이 절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을 함께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빈곤가정의 부모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부모 자질이

안되는 경우가 꽤 많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히 ‘이런 부모들은

안돼’ 식으로 아이 하나만 그 환경에서 빼내오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도 한다. 그러나 빈곤으로 인한 결식으로 일시 보호시설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내가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바로 그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당분간 여기 있을 뿐, 부모와 결국

다시 살게되니 여기 있어도 꿀릴 것 없다”는 식으로 당당해 한다는

것이다. 돌아갈 가정이 존재한다는 것이 시설 편견을 극복하게 해준 셈이다.

이들 아동들을 돌보는 이들은 처음엔 학대받던 가정을 끊임없이 그리워

하는 아동들을 이해못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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