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그룹들 ‘페미존’ 구성해

여성, 청소년, 퀴어, 장애인 이름으로

유신잔당·가부장제 타파 외쳐 

 

3일 오후 4차 페미존에 참여한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나영 활동가가 촛불을 들고 있다. ⓒ강푸름 기자
3일 오후 4차 페미존에 참여한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나영 활동가가 촛불을 들고 있다. ⓒ강푸름 기자

 

이날 페미존에 참석한 페미니스트들은 “페미가 세상을 바꾼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했다. ⓒ강푸름 기자
이날 페미존에 참석한 페미니스트들은 “페미가 세상을 바꾼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했다. ⓒ강푸름 기자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 페미가, 장애인이, 퀴어가, 청소년이,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세상을 바꾼다!”

3일 오후 서울 경복궁역 근처에서 페미니스트들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3일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제6차 민중총궐기 범국민행동에 참가한 이들은 본 집회에 앞서 ‘페미존’을 조직해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페미존은 혐오발언·혐오문구를 지양하고 평등집회를 추구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나영 활동가는 “왜 하필 박근혜가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서 우리를 이렇게 괴롭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여성 정책도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던 박근혜가 ‘여성’을 상징으로 내세워 당선된 것 자체가 이 사회에서 여성이 얼마나 정치적 주체로 여겨지지 않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제 우리는 여성이 단지 ‘상징’으로 이용되거나 할당제, 지분 정도로 여성정치 참여에 의미를 부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그래서 지금 광장에 나온 우리의 행동이 더욱 중요한 것이고, 개발과 성장 중심의 정치를 넘어 페미니즘 관점의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4회째를 맞은 ‘페미존’ 집회에는 불꽃페미액션, 강남역 십번출구,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정의당 이화여대 학생위원회, 알바노조,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박하여행(박근혜 하야를 만드는 여성주의자 행동), 노동당 여성위원회, 스윙 시스터즈 등이 참여해 여성의 권리 신장과 박근혜 정권·유신잔당 타파를 촉구했다. 

 

페미존에 참여한 시민이 ‘유신잔당 박살내고 가부장제 퇴치하자’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강푸름 기자
페미존에 참여한 시민이 ‘유신잔당 박살내고 가부장제 퇴치하자’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강푸름 기자

 

페미니스트 그룹은 3일 오후 서울 경복궁역 근처에서 사전집회 ‘페미존’을 구성해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강푸름 기자
페미니스트 그룹은 3일 오후 서울 경복궁역 근처에서 사전집회 ‘페미존’을 구성해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강푸름 기자

사회를 맡은 스윙 시스터즈(여성주의 춤 동호회) 운영자는 “집회에 참여한 청소년이 겪은 불쾌한 경험을 이야기해주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아이에게 어떤 아저씨가 ‘1분만 같이 걸으면 안 되겠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가 ‘왜요?’라고 물었더니 곧바로 사라졌다더라”며 “도대체 무슨 의미로 미성년자에게 그런 말을 꺼낸 것인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에서는 간혹 여성이나 청소년이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성적 대상 혹은 기특한 대상으로 여겨져 논란을 낳고 있다.

스윙 시스터즈는 “성희롱 발언이나 성추행을 하는 가해자들에게 오히려 ‘왜 나한테 같이 걷자고 하는 거냐’ ‘지금 어딜 만지는 거냐’고 큰 소리로 맞받아쳐 상대방에게 수치심을 안겨주자”고 제안했다. 참석자들은 큰 박수와 함성으로 호응했다.

알바노조는 이날 자유발언을 통해 페미존에 동참한 이유를 밝혔다. 알바노조는 “올해부터 여성노동 문제를 많이 고민해왔다”며 “영화관 남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 대한 외모차별이나 여성에게 가해지는 감정노동, 성희롱을 내부적으로 많이 고민하고 어떻게 대응할 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기도 이천시의 모 레스토랑에서 8개월 동안 고용한 50명의 여성 알바노동자가 성희롱을 당했다”며 “최근 자료를 입수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알바노조는 “연대를 부탁드린다”며 노조도 페미니스트들과 끝까지 연대할 것을 다짐했다.

자유발언에 참여한 한 시민은 “제가 만나는 사람한테 오늘 여기 온다고 하니 ‘너 거기 가서 성추행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는 소리를 들었다”며 “성추행하는 남성이 잘못인 거지, 박근혜정권 퇴진 시위에 나온 여성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성추행당한다고 해서 집회에 나오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보다 계속 집회에 나와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고 권리를 외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자리에서는 집회 내 성희롱 대응매뉴얼도 공유됐다. 매뉴얼은 △성희롱을 당했을 때는 큰 소리로 피해사실을 알린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증거를 남긴다 △주변에 증언을 해줄 수 있는 분의 연락처를 받아둔다 등이다. 성희롱 대응매뉴얼을 만든 미디어브릿지의 하은씨는 “여성들은 시위를 하면서도 여전히 대상화되고 있다”며 “이 광장에서 어떻게 서로를 지킬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대응매뉴얼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성들이 소외되지 말고 당당하고 안전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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