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분쟁 지역 여성인권 전문 사진기자 정은진

전시 성폭력 피해자 문제에 초점

제2회 정대협 나비평화상 수상

 

프리랜서 사진기자 정은진씨가 2007년 아프가니스탄 바닥샨주에서 쇼하다 지역 경찰서장(오른쪽)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은진 제공
프리랜서 사진기자 정은진씨가 2007년 아프가니스탄 바닥샨주에서 쇼하다 지역 경찰서장(오른쪽)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은진 제공

카메라를 들고 총탄이 오가는 분쟁 지역을 누비는 여성이 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사진기자 중 한 명인 정은진(46)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2004년부터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활동하며 국제사회에 아프리카와 아프가니스탄 등 내전 속에서 무방비 상태로 성폭력에 노출된 채 살아가는 여성들의 참혹한 현실을 고발해왔다.

정씨는 올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가 전시 성폭력 문제 해결에 기여한 활동가와 단체를 격려하기 위해 제정한 ‘나비평화상’을 수상했다. 지금도 시리아 여성 난민을 취재하기 위해 그리스에 머무는 정씨는 <여성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사진으로 한국 여성과 세계 여성을 잇고 싶다”는 말로 수상 소감을 대신 했다.

“제가 가진 사진이라는 기술이 한국 여성과 세계 여성들을 잇는 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정대협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연대 기금인 나비기금과 해외 비정부기구(NGO)와의 연계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서울대 동양화과에서 그림을 전공한 그는 뉴욕대(NYU) 티쉬 사진과, 미주리대 언론대학원 포토저널리즘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부터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활동했다. 2004년 말 태국에서 쓰나미 발생 이후 상황을 촬영한 정씨의 사진이 미국 뉴욕타임스 1면 톱으로 실리며 주목받았다. 백인 남성들이 독점하던 세계 보도 사진계에 아시아 여성으로서 ‘정은진’이라는 이름을 알린 계기였다.

정씨는 이후 콩고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담아낸 포토스토리 ‘콩고의 눈물’로 2008년 프랑스의 세계적인 보도사진전 페르피냥 포토페스티벌 경쟁부문 제1회 피에르&알렉산드라 불라 상을 받았다. 2010년엔 앙코르 포토페스티벌에서 아시아 여성 사진가 15인에 선정되면서 대표적인 분쟁지역 여성인권 전문 사진기자로 꼽히게 된다. 특히 2014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열린 초청 특별전 ‘콩고의 눈물 2014: 끝나지 않은 전쟁, 마르지 않은 눈물’을 통해 콩고 내전으로 인해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살아가는 콩고 여성들의 참혹한 현실을 한국 사회에 알리기도 했다.

 

2008년 콩고민주공화국 고마시 케셰로 병원의 성폭력 피해여성 병동에 있던 18세 소녀 이마퀼레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정은진씨. ⓒ정은진 제공
2008년 콩고민주공화국 고마시 케셰로 병원의 성폭력 피해여성 병동에 있던 18세 소녀 이마퀼레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정은진씨. ⓒ정은진 제공

“한국의 역사는 아프리카와 닮아있습니다.” 정씨는 분쟁지역 여성인권 문제를 취재하며 한국의 과거를 봤다고 했다. 과거 우리나라 여성들도 일본군‘위안부’ 등 전시 성노예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다.

정씨가 취재한 콩고의 성폭력 문제는 심각했다. 빈민구호단체 옥스팜에 따르면 2004~2008년 콩고 남키부 주 판지(Panzi) 병원에서 진료받은 피해자 4311명 가운데 56%가 자신의 집에서, 가족 앞에서 강간당했다. 이중 남편과 함께 병원에 온 이는 1%가 채 되지 않았다.

정씨에 따르면 콩고 군인들은 강간을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전쟁 무기로 사용한다. 가족이 보는 앞에서 성폭력을 행하고 여성의 생식기에 치명적인 외상을 가하기도 한다. 피해 여성은 제3의 누관(漏管)인 ‘피스툴라’(fistula)가 생겨 대소변을 조절할 수 없게 된다. 악취로 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다반사다.

 

정은진씨는 2014년 콩고민주공화국 남키부주 미노바에 사는 마시카(가운데)를 만나 정대협 나비기금을 전달했다. ⓒ정은진 제공
정은진씨는 2014년 콩고민주공화국 남키부주 미노바에 사는 마시카(가운데)를 만나 정대협 나비기금을 전달했다. ⓒ정은진 제공

특히 정씨는 콩고에서 만난 레베카 마시카 카추바(Rebecca Masika Katsuva)를 잊을 수 없었다. “마시카는 1998년 자신의 집에서 12명의 무장군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어요. 군인들은 그녀의 남편도 살해했고, 엄마와 두 딸도 함께 강간했습니다.”

마시카는 듣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비극을 겪었지만 전시 성폭력 생존자로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여성들을 돕기 위해 활동가로 변신했다. 강간을 당해 집에서 쫓겨난 여성들과 전쟁고아를 위한 쉼터를 운영하던 마시카는 안타깝게도 지난 2월 말라리아 합병증에 의한 급성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겨우 마흔 아홉의 나이였다. 

그의 부고를 뒤늦게 접한 정씨는 “마시카가 자신의 힘든 삶을 견뎌내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며 살던 현장을 직접 보고 취재했기 때문에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리아 난민 여성을 취재 중인 그는 “현지에서는 늘 돌발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계획대로 순조롭게 취재가 될지는 미지수”라며 “일단은 시리아 난민 취재는 처음이기 때문에 이번 경험을 통해 앞으로 반 년간 후속 취재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씨는 “전시 여성 성폭력 문제는 지금도 진행 중”이라며 “전 세계가 이 문제에 주목할 때까지 꾸준히 취재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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