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표현 못하는 조정석이 멋있다고?

남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감성 죽이는 훈련 시작

 

‘훅업문화’ 빠지는 것도 마찬가지

미안하다고 말하고, 잘 울 줄도 알고,

느끼는 감정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 됐으면

며칠 전 엄마가 보던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을 옆에서 답답하게 봤다.

“조정석은 왜 매번 감정 표현을 못하는 묵묵한 남자 역할을 하는 거지?”

많은 여성들이 멋있어 하는 ‘묵묵한 남자’.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면, 여자 연예인들이 ‘나쁜 남자’를 이상형으로 꼽는 경우가 많았다. 인기 있는 한국 드라마에서는 늘 ‘묵묵한 남자’, 사랑 표현을 잘 못하는 남자, 아무 말도 안하고 갑자기 나타나서 여자의 손목을 덥석 잡고 나가는 남자, 그런 남자들이 멋있게 그려진다. 나도 크면서 ‘아~ 저런 남자가 멋있는 거구나~’ 생각했다.

페미니즘에 관심과 열정이 커지면서, 이런 드라마 캐릭터들에 질색하게 됐다. 엄마가 드라마 보는 모습도, 잘난 척 하면서 비평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내가 이런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묵묵한 남자’를 생각하면서 미국의 ‘훅업문화’(hook up culture)가 떠올랐다. ‘훅업’은 섹스를 했다는 뜻이고, ‘훅업문화’란 커플은 아니고, 그냥 섹스만 하고 감정 표현을 안 하는 커플문화를 의미한다. 매주 새로운 사람과 잘 수도 있고, 같은 사람과 계속 잘 수도 있지만, 사귀는 게 아니란 것이 중요하다. 한 사람에게 절대로 집착하면 안 되기 때문에 애정 표현도 하지 않고, 자기 인생의 중요한 일들을 나누지도 않는다. 문자도 일부러 씹어버린다.

대학 친구인 카밀라 레날데는 졸업 논문을 ‘훅업문화’를 주제로 썼다. 카밀라가 직접 남녀 친구들을 인터뷰해서 모은 자료를 보면, 많은 20대들은 ‘훅업문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으로 ‘썰렁해야 하는 것(chill)’을 꼽았다. ‘썰렁해야 하는 것’은 감정을 보여주지 않고, 사귀는지 아닌지를 걱정하지 않고, 그냥 쿨하게 있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카밀라는 논문에 “‘썰렁해야 하는 것’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한다면 진심을 담은 관계를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훅업문화’는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섹스를 감정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멋있다고 생각하는 문화이기에, 남자다움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싶다.

최근 미국에서 유명한 페미니스트 작가인 벨 훅스(bell hooks) 가 쓴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 남자, 남성성, 그리고 사랑』(The Will to Change: Men, Masculinity, and Love) 라는 책을 읽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남자다움’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롭고 위험하다면서, 우리는 어떻게 남자들에게 사랑을 가르쳐 남자들도 자유롭게 만들어 주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훅스는 남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분노’ 외에는 자기의 진심인 감성들을 다 죽이는 트레이닝이 시작된다고 썼다. 감정 표현은 약한 모습이라고 배우는 불쌍한 남자들.

드라마의 묵묵한 남자 그리고 ‘훅업문화’를 따르는 나. 둘 다 비슷하다. 감정 표현을 무서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페미니스트인 나도 이러는 내가 너무 싫다. 그래서 맨날 친구들이랑 우릴 이렇게 만들어 놓은 남자들 욕을 아주 열정적으로 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틀렸을 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알고, 잘 울 줄도 알고,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래야 더 솔직하고, 공평하고 그리고 깊은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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