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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학’ 국내 1호 박사, 페미니스트 김신명숙
김신명숙, “여성운동에도 ‘힐링’이 필요합니다”
‘나쁜 여자’ ‘여신’ 담론으로 확장돼… 여신 의례 자체가 여성의식화 과정
입력 2013-08-28 13:08:44 | 수정 2013-09-02 오전 9:10:00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자기 안에 은연중에 들어 있는 기존 남성 중심의 세계관이 180도 바뀌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엔 그 변혁 과정이 너무나 새롭고 흥미진진한 경험이어서 내내 가슴 뛰지만 견고한 현실의 벽을 계속 두드리다 보면 어느새 차츰차츰 지쳐간다. 어디서 이 슬럼프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운을 얻느냐는 문제는 여성운동 현장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이미 십수 년 전부터 고민돼온 오래된 화두다. 최근 서울대 여성학 협동과정에서 처음 배출한 박사학위 취득자 3명 가운데 국내에선 처음으로 ‘여신학’(女神學)으로 박사학위(‘서구 여신담론과 관음여신의 대안 가능성’)를 받은 언론인 출신 김신명숙()씨는 여신학을 여성운동 현장에 새롭게 접목하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그는 독일 유학 생활 중 접한 페미니즘을 소재로 1990년대 말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는 책을 출간, 반향을 일으키며 공식적으로 “나는 열혈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했다. 이후 지금은 폐간된 여성주의 저널 ‘이프’에 합류해 ‘미스코리아대회를 폭파하라’ ‘허난설헌’ 등의 소설을 발표하면서 이를 여성주의 행사에 적극 연결시켜 왔다. 그러나 그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군가산점제 찬반 TV토론회에서의 소신 발언으로 소위 ‘꼴페미’의 대명사가 돼 십수 년 전부터 마초 남성들의 집요한 공격과 맞서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화해와 용서, 치유와 포용을 상징하는 ‘여신’ 코드에 푹 빠져 그 과물을 내놓았다는 사실이 그냥 스쳐 지나가지지 않는다.

“여성운동을 통해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는 성과는 얻었으나 이 상태로 계속 갈 수만은 없다”며 “(기존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고발·감시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론 서로 연대해 힐링(healing·치유)하고 임파워먼트(empowerment·역량강화)하는 새로운 이슈가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를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성모마리아, 관음상 등 모든 인간은

여성적 신성 추구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여신학, 어떤 계기로 몰두하게 됐나.

“구체적으론 KBS TV의 ‘미디어 포커스’ 진행을 그만두고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게 된 2005년, (미 유니언신학대 교수로 한국에 여신학 담론을 들여온) 현경 선생의 책을 접하면서 여신학을 평생 화두로 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거슬러 올라가면 삶과 죽음이란 영적 문제를 십대 때부터 본격적으로 고민해 20대 대학 시절을 온통 보냈다. 답을 찾고자 불교도 기웃거려 보고,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는 직업으로 기자를 택하기도 했다. 답을 못 찾은 채 10년여의 기자생활을 마무리하고 독일로 가 우연히 페미니즘을 접했고 페미니스트의 길에 매진해왔다. 30대 초반 당시 워킹맘이었기에 문제의식이 더 절실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운동을 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가슴 한쪽이 늘 헛헛했다. 페미니즘은 세속적 문제이기에 본래 내가 원하던 영적 추구와는 대치된다고 생각했다가 여신을 만나면서 이 둘을 합칠 수 있는 접합점을 찾았다. 그때의 흥분과 기쁨이란! 내 인생이 여신을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흘러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여신의 영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신을 종교로 볼 수 있을까.

“1960년대 거센 여성해방 운동의 파고를 경험한 서구에서 1970년대 초반부터 여신운동이 출발했다. 여신 담론의 생성과 논쟁은 대략 네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마리야 김부타스를 중심으로 해 고대 황금시대를 누린 여신의 역사에 초점을 두고 탐구하는 그룹, 페미니스트 마법신앙의 여신 숭배 그룹, 융 심리학을 바탕으로 여신의 원형적 측면을 탐구함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룹, 여신을 여성의 힘 혹은 자아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그룹이 그것이다. 나는 페미니스트 신학자로 70년대 말 ‘왜 여성들은 여신을 필요로 하는가’라는 논문을 발표, 여신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한 캐롤 크리스트를 중심으로 연구했다. 크리스트의 여신종교 논란에 대한 입장은 한마디로 ‘규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너한테 효과가 있으면 된다’라는 것이다. 여신을 종교로 본다면 아마 우리나라의 무속신앙과 매우 흡사할 것이다. ‘여성적 신성’으로 전체 종교를 관통할 수도 있겠다.”

-종교와 여성성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가령 예수의 죽음 후 일어난 부활 사건도 서양의 여신 종교에선 남신이 여신의 품안에서 가을쯤 죽었다가 봄쯤 다시 태어난다고 해석한다. 이는 기독교 태동 당시 여신신앙이 이미 그 바탕이 돼 있었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예수와 마리아, 이집트의 이시스와 호루스 등 모자관계의 상징 속에 이미 여신의 전통적 요소가 다 들어가 있다고 본다. 불교 내부에도 인도의 여신종교가 다 들어가 있다.

결국 인간의 본성 자체가 신성을 여성으로 보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 관음이 여성으로 된 것도 정통 불교가 아닌 민중에 의해서고, 성모마리아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서양에선 ‘하나님이 너무 바빠서 어머니를 (보호자로) 우리에게 보냈다’는 말도 흔히 하지 않는가. 생명 창조, 사랑, 자비와 용서 등 종교적 콘텐츠의 가치 자체가 여성적이라고 본다.”

초경·완경 등 여성 삶의 주요 순간에

의례 통해 의미 새롭게 부여

-여신을 종교적 영성에서 조명하면서 종교의 젠더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종교의 젠더성은 굉장히 복잡하고 심각하다. 부처의 신체엔 32개의 특징이 있다고 하는데, 승복에 감춰진 페니스도 그중 하나다. 이처럼 종교는 하나님 아버지, 부처, 성부와 성자 등 신성을 확연히 남성과 연결하는데, 여기에 대한 반론이 나오면 ‘신은 성을 초월한 존재’ 혹은 ‘성은 단순히 편의적 수단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 어머님’은 절대적으로 거부하는가. 그래서 영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며, 종교야말로 가장 깊게 인간의 삶을 규정하면서 고도의 정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신 운동의 가장 큰 매력이 무엇인가.

“나 자신이 곧 여신이고, 내 운명 역시 내 손안에 있다는, 자기 스스로의 임파워먼트 아닐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믿는 것이다. 힐링은 여신 의례 과정에서 나온다. 의례는 여성 의식화 과정에서 필히 하는 개인 히스토리를 토해내며 공감, 소통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춤이나 명상 등의 프로그램을 곁들이면서 자기를 드러내 공동체와 자신의 삶을 공유하고 또 공동체로부터 격려를 받으며 치유해간다. 외형적 형식은, 굳이 말하자면 우리 굿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개 처음엔 여성들이 다 둘러앉아 원을 만든 후 여신을 부른다. 이를 통해 공동체가 에너지를 모아 이를 하늘로 올려 보냈다가 다시 땅으로 퍼지게 한다는 식이다.”

-의례에선 종교적 교리나 설교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데 퍼포먼스만 있다는 뜻인가.

“여성 생애의 주요 순간마다 그 사건에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고 새롭게 규정한다는 데 핵심이 있다. 가령 초경을 여신으로 의례화해 보면, 초경을 하는 딸과 엄마 10쌍 정도와 함께 벌이는 축제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여신 운동에서 인디언의 의례를 적용해 딸과 엄마의 초경 경험을 나누고 교감하면서 자기 몸의 결정권 등 성교육과 함께 달밤 의례를 행한다. 엄마와 딸의 팔을 끈으로 묶고 화관을 씌워주며 ‘너는 여신이 된다’는 축하 노래와 함께 마지막 순간에 서로의 팔에 묶인 끈을 잘라내면서 ‘딸아, 넌 더 이상 내 아가가 아닌 하나의 여성, 독립된 인간’이라고 선언하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그 기억은 딸의 일생 내내 갈 것이다. 완경(폐경) 의례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을 맥 빠지게 하는 그 사건을 의례를 통해 힘을 주는 사건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다. 완경은 대모의 길로 진입하는 새로운 단계, 누구의 아내나 엄마가 아닌 비로소 자기 자신이 중요하게 되는 단계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힌두교의 파워풀한 여신 칼리를 향한 집단적 의례를 통해 가부장제의 악을 처단하는 쾌감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주 신화에서 ‘백주또’는 남편이 변변치 못하니 서로 재산을 갈라 이혼하자 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홀로 키워내 이들을 모두 각 마을의 신으로 만든 여신이다. 이걸 응용하면 이혼 여성들의 수호신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적 페미니즘 운동인 여신운동,

사회참여적 성격 강하다”

자기 치유에 몰두하는 여신 담론, 어떻게 여성운동과 연결될 수 있을까. 기자의 회의적 질문에 그는 “일종의 문화적·영성적 색채의 또 다른 여성운동이라 이해할 수 있다”며 “이때의 영성이란 현실 도피가 아니라 반대로 아주 강력한 사회참여적 성격을 띤다”고 답한다. 여신운동의 출발 자체가 가부장적 종교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만큼 영적 페미니즘 운동으로서 종교적 성찰을 통해 더 포괄적으로, 더 깊이 있게 환경·평화 운동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해왔다고 말한다. 캐롤 크리스트나 스타호크 등의 개척자들은 모든 시위운동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적극적으로 동참한 운동가였고, 특히 크리스트의 경우 크레타 여신 순례를 전개하면서 그리스로 귀화한 뒤 지방선거에까지 출마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내가 행복해야 여성운동도 잘 할 수 있고, 대의명분과 내 삶이 일치하지 않으면 늘 희생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고 고백한다.

‘여성운동도 일종의 수행’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영성과 힐링이 현재의 여성운동가, 그리고 미래의 잠재적 여성운동가들에게 강력히 작용하길 바란다. 그들의 즐거운 삶이 우리 여성의 미래를 좀 더 신나게 바꾸어갈 수 있도록.

2014 여성신문 '여성이 평화입니다'

1253호 [] (2013-08-28)
이은경 / 여성신문 편집위원 (pleu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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